(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돌이켜 보면, 나는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 속 단정한 밑줄처럼 자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인생의 가치 대부분을 주일학교 시절 배웠다. 중고등부 시절에도 찬양팀, 성가대, 임원을 하면서 주말을 교회에서 보내는 삶을 당연히 여기며 살았다. 시내에 위치한 기독교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CCM 앨범을 사 듣는 일이 취미라면 취미였다. 교회 형들 어깨너머로 통기타를 배우며 ‘찬미 예수’ 시리즈 악보집과 친하게 지내던 시간도 생각난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같은 배타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신앙 서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읽었던 기억도 난다. 물론 그런 책들의 권면이 없어도 교회 밖의 문화에 마음을 두거나 시간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열다섯 살, 임자도 천막 교회에서 열린 여름수련회 이후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체성 없는 상상일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가 할 수 있는 ‘역할’ 안에 내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20대를 통과하는 중 신학을 전공한 교수가 되는 꿈에서 일반대학 교수가 되는 꿈 정도로 궤도 수정이 있었을 뿐이다.
독자분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방금 말씀드린 ‘궤도 수정’의 과정을 자가 해명해보려고 한다. 어느 시대이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낸 세대들이 서로 다른 의식과 취향으로 뒤섞여 살아간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라는 말은 이때에도 쓸 수 있을 거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빌리면 미시적으로 변별되는 ‘감정 구조’를 가진 세대들이 서로 역동적으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1955년부터 1960년 안팎 출생자)의 경우, 국가 재건을 위한 부름 앞에 떠밀려야 했다. 빈곤을 이기기 위한 노력은 개인적 욕망이라기보다는 가족주의, 혈연주의 전통 속에서 피붙이를 위한 희생의 의미가 컸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그 이후 19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N86세대’라는 용어로 단순 환원하기도 한다. 그들을 통해 한국의 현실 정치는 진일보했고, 소위 ‘민주화’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 세대를 끝으로 한국 사회 특유의 공동체주의는 점차 희석된 게 아닌가 한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 주민등록 인구의 평균연령인 44세이다. 그리고 90년대에 20대에 진입한 세대이다. ‘자유’, ‘민주’, ‘평화’, ‘통일’, ‘민족’과 같은 거대 담론과 연결된 단어들에 사로잡혀 대학을 다닌 세대는 아니다. 나의 세대는 IMF 사태가 벌어진 이후 우리나라가 극심한 ‘피로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봤다. 저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환경에서 성장했고,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특유의 능력주의 문화 속에서 경쟁을 통한 성공에의 압력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내가 20대를 보내던 무렵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신화는 없다>, <7막 7장>과 같은 책들이다.
한국 교회의 가열찬 성장은 베이비붐 세대에서부터 내가 속한 세대까지 정말 눈부셨다. 각 세대가 안고 있는 불안과 고통, 그들이 꾸던 욕망(세속적인 욕망까지 포함해서)에 교회는 확실한 답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러 통계를 보건대, 지금 한국 교회는 급속한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듯하다. 한 번 붙은 가속도를 어느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다. 나는 서른 살에 청년 사역이 활발하던 동안교회에서 청년부 위원장을 했다. 전체 교인이 5천 명 수준이었는데, 대학부와 청년부에 출석하던 청년 수를 합하면 2천 명에 이르던 교회였다. 생각할수록 서글픈 사실을 말씀드리면, 그런 동안교회조차도 지금은 전성기의 1/3 수준의 청년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
소위 ‘MZ세대’로 통칭되는 오늘날의 청년들은 사회문화적으로 또 다른 의식과 가치관을 가진 것 같다. 그들 세대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미움받을 용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공정하다는 착각> 등이 있다. 극심한 ‘피로 사회’ 이후 자기 안녕에 충실한, 파편화된 개인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정서적 고립과 불안, 편의적인 관계 내에서의 정체성의 혼란, 사회구조적 불평등과 비상식에 의한 피해의식 등은 이들을 강하게 억누르고 있다.
교회가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정작 그들에게 한국 교회는 마음을 주고픈 친구가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 비친 교회의 모습을 헤아려 보겠다. 복음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시대 교회는 귀를 열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 집단이다, 가장 고상하고 도덕적인 언어를 공유하지만, 주요 종교 중 가장 위선적인 집단일 수도 있다. 사회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하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은데, 심지어 그들은 일방적이고 권위적이기까지 하다. 정죄의 화법으로 세상을 평가하고 재단하려 들지만, 정작 평가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포용력이 없다. 일부 교회는 세상보다 더 세속적 가치, 성장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게 틀림없다. 예수님처럼 사회를 돌보는 데에는 오히려 소홀하고, 공공선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책임적 역할을 감당하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고 일반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자 결단하게 된 계기는 그와 관련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실천이 필요한 자리가 교회 바깥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은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 중 하나일 것이다. 선교하는 교회란, 하나님과 긴밀히 소통하고, 세상과는 절실히 소통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성도를 모으는 일에만 열심이고, 부름받음을 확인시킨 후 제 사명대로 내보내는 일에 소홀한 교회는 직무유기이다. 오늘은 ‘하나님의 편지’로, ‘등경 위의 빛’으로 살지 못한 나부터 반성하려 한다. 팬데믹이 지나가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치겠지만, ‘개신교인 거리두기’는 여전할 것만 같아서 슬프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내 그릇의 크기만큼 청지기로 살아갈 것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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