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 하면 가장 먼저 서울의 어느 공원에서 쩔쩔매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9년 봄, 대학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석종준 선교사님으로부터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를 전해 듣고, 호기롭게 발표 신청을 했다. 그런데 업무와 개인사에 치여 시간이 흘러가다가, 마침 가족들과 함께 공원 나들이를 나갔을 때 부랴부랴 발표 원고 투고일이 임박했다는 독촉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한낮에 공원 한가운데서 쩔쩔매면서 금방 제출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그때부터 동역회와 인연을 맺게 되어, 1년에 한 번씩은 학술발표나 논찬에 참여하고, 부족하지만 이곳에 글을 투고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또한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40대 이하 젊은 그리스도인 소장 학자 모임에도 초청받은 것은 내게 큰 축복이다.
돌이켜보면 갓 스물이 되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후로, 내게는 감사하게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좀 과장하자면, 2004년 봄부터 2005년 가을까지가 필자의 이후 인생을 반쯤 결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보다 반년 전인 2003년 가을, 예수님을 영접했다고는 하나, 나는 여전히 스스로 설계한 인생 계획을 따를 뿐이었다. 그러다가 당연히 이루어질 줄 알았던 대학교 졸업이 하나님의 섭리로 6개월 늦어지게 되면서, 단순히 유명한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내 인생 계획을 처음부터 갈아엎어야만 했다. 그 후 2004년 봄부터 여러 선배를 통해 카이스트 기독학술동아리 RACS(Research Association for Creation & Science)에 가입하고,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이론을 처음 접했었다. 내 연구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직접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었다.
그러나 2005년 여름, 믿지 않는 연구실 선배들과 간 해외학회에서 지적설계를 포함한 기독교적 학문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후 몇 개월간은 내가 연구하는 과학에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있는지, 과학이란 마치 (죄송하지만) 살인이나 매춘처럼, 결국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내게 2005년 가을에 있던 ‘2005 성서한국대회’는 반드시 참여해야 할 숙제와 같았는데, 특히 과학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소모임이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첫 소모임에서 각자를 소개할 때,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는 채로 “나는 이곳에 동료를 찾기 위해 왔다”라고 무슨 만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쳤던 기억이 부끄럽게 남아 있다. 당시에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학교를 벗어난 여러 사람들과도 직간접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요즘도 RACS에서, 또 (자주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인 소장 학자 모임에서 과학을 포함한 여러 주제를 같이 공부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은 내게 소금과 같은 기쁨을 준다. 물론 비슷한 이야기를 학회나 연구 현장의 동료들과도, 또는 교회 공동체에 있는 지체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라도, 기독교 세계관을 같이 공부하는 기독교학술공동체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그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얼마나 진실하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연구 현장에서 토론할 때는 학술적인 깊이는 좀 더 깊어질 수도 있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대놓고 거역하는 사상에 부딪혀서 영적으로 많이 힘들어질 때가 많다. 반대로 일반적인 교회 공동체에서는, 안타깝게도 ‘토론’ 자체가 그다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그보다는 좀 더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분이 하는 선포와 순종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또한, 내가 토론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어떤 분이 상처받지는 않을지, 혹은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인지 의심하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하고 싶은 말을 참게 되는 일이 많았다.
지난 1년간 내가 속한 기독교 세계관 모임에서 같이 공부하고 다룬 주제는 매우 다양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뇌와 영혼의 관계는 무엇인가. 과학과 신앙을 어떤 관계로 볼 것인가. 전쟁, 복지, (동성애를 포함한) 성 문제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대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실용주의란 무엇인가. 창세기 1-11장에 있는 ‘원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 것인가. 모두 하나같이 어려운 주제고, 대부분 깊은 토론을 해도 뾰족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그런 고민을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비록 토론 끝에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과정을 거친 나와 우리는 그 이전의 나와 우리와는 분명 다르다고 믿는다. 최소한, 이런 고민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나눌 때 세심하게 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내가 기독교 세계관 모임에서 얻는 가장 큰 유익이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기독교 세계관 공동체에서 누리는 유익을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잘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논의되는 많은 이야기들은 비록 어렵기는 해도 누군가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숨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가 그런 학계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 누군가는 너무 어려워서, 누군가는 관심이 없어서, 누군가는 학계가 사탄에게 점령당했다고 믿기 때문에, 그보다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에, 주위에 있는 믿음 좋은 분의 권면에, 인터넷에서 찾은 명설교에, 감성적인 신앙 서적에 우리 신앙의 성장을 온전히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쩌면, 학계에서 논의되는 이야기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가 너무 괴리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기독교 세계관 공동체가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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