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대학시절 IVF(한국기독학생회)에 들면서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이전까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주로 관계적이고 감정적인 측면들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신앙의 합리적 접근의 측면과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적인 틀이 있다는 것은 새롭고도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졌던 기독교 세계관 강의들은 한동안 내 관심사 밖이었다. 그러나 나는 물리학에 매료되어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 인생과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질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 점차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철학과 신학으로도 관심이 옮겨갔다. 그리고 이전에 들어왔던 기독교 세계관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지적으로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 물리학과 진화 생물학을 토대로 하는 자연주의와 유물론주의가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롭게 와 닿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져왔고 개인적인 확고한 믿음과 경험 때문이었을까. 자연주의가 본인에게 설득력 있게 들려오진 않았지만, 분명 그 자체로 세계를 이해하는 합리적인 틀이 될 수 있어 보였고, 주변의 대다수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의식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바로 이러한 관점에 뿌리를 두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이해를 다소 짧은 시간 안에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부 시절 주로 IVF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현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의 여러 교수님들의 저작과 강의들 때문이었다. 복음의 전파와 한 사람이 복음을 수용함이 반드시 사람의 이해와 합리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독교에 대한 세계관적 이해와 더불어 시대의 주류 세계관에 대한 이해는 비그리스도인들과 교회 밖 사회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헤아려가며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동역회의 활동은 나 개인이 체험한 바와 같이 한국 교회와 세상 사이의 소통을 돕는데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왔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주변 연구실 선배의 권유로 카이스트 기독동아리 RACS(Research Association for Creation & Science)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동아리는 초창기인 1980~90년대까지는 한국창조과학회와 맥을 같이하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내가 참여할 당시에는 이미 ‘카이스트창조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과학과 신앙의 조화 문제에 대한 보다 유연하고 열린 이해를 추구하는 스터디 그룹의 성격이었다. 나는 RACS를 통해 창조과학진영에 속한 분들로부터 유신론적 진화론 진영에 속한 분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들과의 직간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재 동역회에 속한 학자들로부터 배운 철학과 신학적 통찰, 회원들과의 토론과 스터디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 문제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기독교 신앙과 복음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의 풍성한 선물을 제공해주었다. 과학과 신앙의 조화 문제는 언뜻 보기에 순전히 지식의 문제 같지만 조금 더 만족스러운 답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죄의 본질,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하심과 같은 주제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당장 내 오늘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문제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문이나 지성이 기독교 신앙과 분리되지 않고 적대관계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며,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올바른 신앙을 세우고 복음의 본질을 세상에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 큰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나의 깨달음은 과정은 앞서 이 질문을 탐구한 분들의 길잡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지금도 이와 같은 여정에는 선배와 동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동역회는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는 선물의 공동체였다고 고백할 수 있다.
나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기에 과학과 신앙 사이의 조화 문제에 관심이 크다. 수 세기 전부터 인류는 ‘과학의 시대’라고 할 만큼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영향력이 큰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사회 또한 그러한데, 이러한 시대에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균형 잡힌 건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는 아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시절부터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회원들과의 교류와 스터디를 통해 숙고해온바 이 문제는 보기보다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개별 전문성 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제시하는 답은 늘 아쉬운 점이 있었다. 따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 학문 활동의 특성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경험을 갖추고, 신학과 철학 및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토대로 이 문제를 더 깊게 논할 수 있는 ‘신학자’가 우리 시대 절실히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외국에는 그러한 학자들이 더러 있는 것 같고 국내에 번역된 몇몇 서적들도 있으나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대중적인 전달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에 이러한 기독교 인재 양성을 위한 후원과 격려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사이의 교류와 대화를 위한 장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하며, 이러한 대화가 학자들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와 대중들에게 쉬운 언어로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과학의 영역에도 하나님 나라가 우리 시대에 능력 있게 임하기를 동역회 공동체와 더불어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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