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내가 그동안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는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고 영성과 지성을 조화시키며, 기독교 신앙을 학문과 삶으로 실천하고자 애쓰는 공동체이다. 그 마음에 동참하고자 개인적으로는 2019년 기독교학문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논문발표를 했고, <신앙과 삶>(2020년 1+2월호)에 글을 기고했으며, 동역회가 2020년 ‘세상바로살기’라는 주제로 삼일교회에서 진행한 기독교세계관학교에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최근에는 방학마다 개최되고 있는 3번의 ‘기독대학원생 연합 독서나눔 콘서트’에 함께했고, 첫 모임에서는 발표를 맡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동역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학문 분야에서 신앙을 표현하고자 애쓴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 또한 늘 해오던 바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회복지학 전공 내에서도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난 이 문제가 나의 신앙과 괴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구논문의 특성상 신앙 언어를 드러낼 수 없지만, 난 지금까지의 연구 궤적을 이웃 사랑의 길로 믿고 그 길을 계속 걷는다. 격월로 접하는 동역회 기관지 <신앙과 삶>을 읽으며 일터에서, 연구에서, 삶의 여정에서 더 깊고 성숙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자극을 얻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음 아픈 부분들도 있었다. 우선 동역회가 지금보다는 더 다양한 신앙적 스펙트럼의 이야기들이 나누어지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일례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군 복무 시절에 무신론적 사고방식을 가진 한 후임 병사와 함께한 시간을 그리워하곤 한다. 그는 자신의 논리로 예수님을 가장 나약한 인간군상으로 취급하고 배격했지만,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웬만한 그리스도인보다도 깊은 신앙을 역설적으로 발견하곤 했다. 퇴폐적이지만 강인했고 삶에 대한 의지로 충만했으며 무엇보다 신이 없이 삶을 살아내겠다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어떤 어려움도 주 예수님께 쉬이 맡길 수 있는 나와 달리, 그는 유약하면 안 되었고 매사에 용기를 잃지 않아야 했다. 꺾이지 않으려는 그 모습을 그리스도인은 흔히 자아가 죽지 않았다고 쉽게 평가하기 쉬우나, 나는 그를 통해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이것은 특히 내가 예배 강단에서 설교자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하는 식의 설교를 접할 때마다 자꾸 마음에 걸리던 문제였다. 가난을 죄로 여기고 개인을 탓하는 방향의 성경해석과 사조로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무죄 선언’을 하고 위축된 자아를 생동하게 하는 것이 도리어 예수님의 뜻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나의 신앙은 무신론자였던 그의 영향으로 더 뚜렷해지고 입체화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1966)을 배경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2016)를 통해 나와의 연결고리를 제시했고, 결국 나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현재 나는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도시 빈민의 만성적 빈곤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그리고 같은 곳에 살면서 빈민 사역을 하는, 무신론과 유신론을 연결하는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어느 전도사님과 교류하며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동역회가 “가난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다” 내지는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다”라는 도발적인 담론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빈곤 밀집 지역인 동자동 쪽방촌과 4년째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22년 9월 현재 1.5평 쪽방에 사는 젊은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마음의 준비만 6년을 했는데도 현재 거처로 이주하기까지 솔직히 두려웠다. 외부에서 잠시 관찰/봉사하는 것과 그 생태계에 거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는 이곳에 살며 그동안 몰랐던 숱한 불편함을 겪고 있고, 이 지독한 가난의 공간에 적응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연구자로서 잠시 머무르는 입장이기에 평생을 여기서 사는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단순한 쪽방 체험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시간을 온몸으로 온전히 살아낼 수 있기를 원한다. 이곳에 살며 나는 기초 생활 수급자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자주 굶주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여러 교회에서 밥을 얻어먹는 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뇌에 잠기기도 한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또 그렇게 밥을 나누어주기도 하지만 왜 가난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는 차단하는가”라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마 25:45)이라는 말씀은 왜 다른 이들이 아닌 ‘지극히 작은 자’인 그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야 할까.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은 어째서 이 부조리한 가난을 허락할까. 하루를 마감하며 매일 밤 쪽방에 누울 때마다 이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신앙은 이 복잡하고 난해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시험대에 오르며 지쳐간다.
그러나 너무나 아픈 곳이기에 여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계셔야만 하겠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볕들 날이 오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무력해 보인다. 나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쪽방촌의 실상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세상에 보일 그날을 고대한다. 그래서 이 연구작업과 신앙과 삶을 쪽방촌에서 오늘도 하나로 모은다. 동역회에 바라건대 앞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뿐 아니라 엔도 슈사쿠가 그렸던 철저히 무력한 예수님의 모습도 함께 공유하며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단지 사람들을 개종시키려고만 하기보다 그 무력한 모습으로 상대의 삶을 배우고 그들에게 녹아드는 그런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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