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카우보이 영화를 좋아했다 한다. 그의 추종자는 아니지만 철학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서부영화에서는 착한 사람과 악한 놈이 확실히 구별되고, 착한 사람은 항상 이기고 나쁜 놈은 반드시 패하기 때문에 철학처럼 이것, 저것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상을 다 고려하려고 고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선과 악, 진(眞 +)과 위(僞 -), 부와 빈, 유식과 무식, 사(使)와 노(勞), 진보와 보수 등 이분법으로 분류하면 세상 모든 것이 간결하고 선명해진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 중산층, 개인사업자, 중도 같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한 것들이 끼어들면 선명성이 없어지고 문제가 복잡해져서 생각을 혼란케 한다. 어린이나 생각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이분법이 편리하고 흑백논리가 선명하다.
생각하는 것으로는 별로 뛰어나지 않은 한국에는 미국과 비슷하게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빈부, 노사, 남녀, 세대 등의 양극화도 만만치 않지만, 이념의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젯거리다. 마르크스주의나 지식사회학은 사회적 상황이 이념적 성향에 반영된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최근 저소득자와 저학력자들이 고소득자와 함께 보수적이 되고 고학력자들이 진보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고학력자가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그 공식이 통하는 것 같지 않다. 민주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중국이 지척에 있는 것과 지역과 정당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이념 판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형태의 가족 독재와 위협적인 핵무기에 매달리는 북한이 우리 사회의 이념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진보는 그저 경험과 생각이 미숙하여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종북좌파’로 분류되어 나라의 안전을 위협하므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고, 보수는 그저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 많고 고집 센 꼴통만이 아니라 정의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비도덕적’이고 매국적인 친미분자로, 폐기 처분되어야 할 쓰레기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양극화가 공동체를 양분하여 단합과 구성원들 간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건강 수준 세계 2위, 교육수준 세계 3위인데도 사회적 자본이 167개국 가운데 147위일 정도로 상호불신이 심각한 데다가 이념의 양극화까지 가해지니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OECD에서 꼴찌에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놀랍고 안타까운 것은 희생, 용서, 양보, 관용이 포함되어야 할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계가 이념 갈등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모두가 같은 이념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념 때문에 교단, 교회, 같은 교회에 소속된 교인들이 서로 반목할 정도로 양극화되면 이념은 이미 위험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그가 가르친 사랑보다 이념의 위치가 더 중요해졌음을 뜻하고 이념이 ‘우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갈라져서는 복음전파도,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즉 교회가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념은 ‘사명(mission)을 가진 정치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주장들’의 11번째 항목, “철학은 세상을 다양하게 설명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가 분명하게 말하듯, 이념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거기에는 사명감과 확신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념에는 세상을 개혁하여 구원하려는 사명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유사종교의 성격이 있다. 이념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이념에 근거해서 폭력행사를 감행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성경의 잣대로 이념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대신 성경을 이용하여 이념을 정당화하면 그에게는 이미 이념이 우상으로 변질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낙태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Donald Trump)를 따르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바로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념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조만간 웃음거리가 되어 사라질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야말로 ‘객관적 이론’이고 기독교를 포함한 그 외의 모든 주장은 ‘이념’이라고 확신했지만, 그의 이론은 나중에 이념의 전형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세상을 개조하기는커녕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만 가져왔다. 보수, 진보 이념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목을 맬 가치는 전혀 없고, 영원한 복음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국에서 이념 양극화 주범은 정치인들이다. 만약 보수, 진보 정당들이 없었거나 정당들이 표방하는 이념이 다른 것들이었더라면 보수와 진보가 이렇게 양극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므로 그들이 과연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을 실제로 믿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북한의 김씨 독재자들이 사회주의를 믿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인들도 권력 유지나 획득을 위하여 이념을 이용하고 있는데, 판단력이 부족한 시민들이 그들의 조작에 휘말려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어쨌든 영원한 진리를 따른다는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런 이념에 목을 매고 열을 올리며 서로 반목하는 것은 참으로 자존심 없고 부끄러운 처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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