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우리는 흔히 양극화가 빈부 격차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기독교 내부에 형성된 양극화 현상은 3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신학적 양극화요, 둘째는 정치적 양극화, 마지막으로 문화적 양극화가 그것이다.
먼저, 신학적 양극화는 보수신앙과 진보신앙, 혹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편차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 전반의 신앙 구조에는 경건주의 모델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탓에 신학적 보수주의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신교 신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을 더 요구받고 있다. 예전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적 정직성’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가려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기독교 교리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라는 맹목적인 신앙보다 그 신앙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는가를 질문하는 풍토가 많아지고 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지금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성서문자주의, 지옥 형벌론 등을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보수적인 관점에서 믿어왔던 성경관, 속죄관, 종말관 등 기독교 신앙 전반에 걸쳐 ‘보수-근본주의’ 신앙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신앙으로 비난받는 형국이 되고 있다. 반대로 ‘진보-자유주의’ 신앙은 열려 있고 관용적이라는 이유로 호의적인 평가 일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한국 교회의 양극화에는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학적 양극화가 주된 쟁점이다. 이 신학적 양극화에서 표면적으로는 근본주의가 대세인 듯 보이지만, 개신교 신앙 내부의 흐름을 관찰한다면, 근본주의는 우호적이지 않아 보이고 점차 퇴조하고 있으며, ‘진보-자유주의’ 기독교로 신앙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신학적 양극화의 대결 양상을 지켜보면, 서구 특히 북미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복음주의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들, 특히 신앙에 대해 합리적이고 상식신앙을 선호하는 기독교 그룹은 자유주의 기독교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신앙관과 신학적 관점에서 ‘맹목적’이란 수식어는 근본주의 진영이 아니라 ‘진보-자유주의’ 진영에게 더 어울리는 용어인지 모른다.
두 번째는 정치적 양극화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정치관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한국 교회 양극화 현상에서 정치적 양극화야말로 가장 극렬한 형태인데, 그것은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를 둘러싼 것이다. 보수교회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유신 시대와 그 이후 군부정권을 향한 교회의 정치참여를 반대했다. 보수교회는 이상하리만큼 독재정권과 반민주 정권에 대해서는 협력적이고 지지하는 정치관을 취했다. 반면 7~80년대 진보교회는 반독재 저항운동에 강렬하게 참여하였다. 이 시대는 정치참여를 화두로 하여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양극화가 극심한 때였다. 그런데 정치참여와 정교분리의 양극화 대결구도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교계에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이 등장하면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보수기독교가 앞장서서 보수정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우파 기독교가 정치세력화되어 등장한 것이다. 오늘에 와서 “보수기독교는 정치참여에 소극적이고, 진보기독교는 정치참여에 적극적”이라는 옛 공식은 깨어졌다. 더구나 최근 극우적 정치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보수-근본주의 기독교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교회의 선교적 책임으로 천명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 1974), 정치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실천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기독교 세계관, 그리고 히틀러 전횡에 저항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정치윤리 등을 자신들의 논거로 삼고 있는 현실 앞에 진보 복음주의 진영이 매우 당혹해하는 실정이다. 그동안 사회 개혁적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 사회참여와 책임 윤리의 신학적 토대라고 생각해 왔던 로잔언약과 기독교 세계관이 우리 사회의 보수 기득권 정치에 활용되고 있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정치적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문화적 양극화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적 양극화란 지금은 잊힌 경향이 있지만, ‘낮은 울타리’ 같은 기독교 문화 단체에서 헤비메탈이나 영화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에서 시작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치열한 논쟁 등을 말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 차별금지법, 동성애, 성 소수자 등의 문제로 치열한 대결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현상은 다름 아닌 ‘문화전쟁’(cultural war)인 것이다. 평소 설교나 행동과 태도에서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목회자로 인정받아온 온 보수 교단의 대표 목회자들이 차별금지법 반대 팻말을 당당하게 들고 시위하는 모습은 우리 안에 문화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의 결혼관이나 혼전 성관계, 문신(tattoo)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인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전통적인 사고와 얼마나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극화를 극복하는 대안과 방향은 무엇일까? 그동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사고와 사회관과 정치관, 그리고 문화관을 다지기 위해 흔히 통용되었던 기독교 세계관의 논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며, 오늘의 시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답을 줄 수 있는 좀 더 포용적이면서 진취적인, 그러면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형성할 수 있는 신학과 인문학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더 다양한 우물에서 길어 올린 신앙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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