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62명이 하위 50%인 세계인구 39억 명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상위 10%가 총 가계 순자산 74.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는 순자산의 1.1%를 갖고 있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미국 내 순자산의 35.4%, 금융 자산의 42.1%, 연 소득의 17.2%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것이 대부분 상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을 통한 소득 상승률이 임금을 통한 소득 상승률보다 크다. 노동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번다.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가 세습사회임을 보여주었다. 엘리트 계층이 일해서 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 있다. 문제는 부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도 불평등하다. <재난 불평등>(동녘, 2016)을 읽어보면 재난이 불평등하게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의 부제가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인 것처럼 사회적인 불평등은 재난도 불평등하게 만든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형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제 기독교가 희년정신을 발휘하여 대조 사회·대안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필자가 이전에 쓴 책 <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새물결플러스, 2020)와 현재 집필하고 있는 <탈성장교회>의 내용을 함께 이곳에 소개하기를 원한다.
교회는 첫째,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여 ‘공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소득·기본자산·최고임금 등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한마디로 소득 및 자산 조사를 하거나 근로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교회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동일한 품삯을 주라”는 말씀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인 ‘기본소득’을 지지해야 한다. ‘기본자산’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한다. 토마 피케티도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 2020)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모든 젊은이에게 종자돈을 주자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놨다. 25세가 되는 모든 남녀에게 성인 1인당 평균 자산의 60%인 12만 유로(약 1억 6천만 원)를 지급하자고 했다. 이것은 구약의 땅 분배 신학을 구현하기 적합한 모델이라 생각한다. ‘최고임금’은 원천적으로 최고임금 이상의 소득을 인정하지 않거나 최고임금 이상의 소득을 인정하되 그것에 100% 최고과세를 적용하는 방법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샘 피지개티(Sam Pizzigati)는 <최고임금>(루아크, 2018)이라는 책에서 최고임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을 연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저임금과 초고임금의 비율을 정함으로써 상한선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 중산층을 확대하고 불평등의 구조를 해소하도록 만든다. 불평등을 일으키는 경제를 ‘바꿀 수 없는 상태’이자 ‘주어진 상태’로 간주하고 재분배 정책을 나중에 펴지 말고,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부의 ‘사전분배’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예방하여야 한다. 교회는 이상의 가치를 공동체 내에서 현실과 형편에 맞게 먼저 실천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교회는 창조신앙을 회복하여 ‘생태적 문명’을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 기후변화가 코로나19를 낳았고 기후 위기가 ‘인류 멸절’로 치닫고 있기에 생태 친화적 문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교회부터 창조와 구속을 통합하는 복음의 총체성을 회복하여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녹색 교회·생태 교회·기후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선 사회가 성장주의를 버리고 GNP가 아닌 국민 총 행복의 가치 기준으로 바뀌도록 만들어야 하고, ‘에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자급적 관점에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민주적 마을을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하며, 물질이나 비물질적인 것을 인간 집단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특별한 사회관계 양식인 ‘커먼즈’(commons)를 넓혀가야 한다. 사회에서 깊게 고민하는 ‘그린뉴딜’과 ‘동물권’과 지구정치(cosmopolitics)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탈성장’ 담론을 받아들여 문명의 전환에 대해 고민하며 공유교회와 탈성장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로컬의 미래’를 꿈꾸며 특정 지역과 골목에 머물고 싶은 마을과 생태 마을을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인간 향상을 꿈꾸는 ‘트랜스 휴먼’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포스트 휴먼 사회를 세워나가야 하며, 지구 돌봄·마을 돌봄·이웃 돌봄을 하는 돌봄 사회·돌봄 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가장 강하고 넓은 지역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교회야말로 이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평화의 가치를 통해 극한 분열로 치닫고 있는 사회를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유럽과 영미의 모습을 보며 이제 서구와 동구의 통합만이 아니라 서방과 동방의 통합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자유·평등·박애의 한계를 드러냄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종언을 불러왔고 ‘리-오리엔트’가 도래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우리 민족이야말로 동방을 대표하는 중국과도 다르고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과도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발견하였다. 교회는 마른 뼈의 환상과 두 막대기의 환상을 가슴에 품고 분열된 땅을 치유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한다. 신냉전과 좌와 우의 분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와 MZ 세대의 갈등, 심지어 ‘이대남’과 ‘이대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는 미학적 삶과 중용의 삶을 통해 양쪽을 모두 아우르고 지나치게 의롭거나 악하지 않도록 하면서 ‘상식의 중간지대’를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좌와 우를 아우르고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와 MZ 세대를 연결하고 하나 되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대녀’에게 공통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이대남’들에게 사회학적 파상력(破像力)을 불러일으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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