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14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세월호 사건 이후 기성세대의 공감 능력과 소통의 부재라는 징후를 포착하면서 필자는 근현대사에서 한국인이 경험한 트라우마의 집단적, 역사적, ‘세대전이적 특성’에 관한 글을 저널에 실은 적이 있다. 한 개인의 삶으로 볼 때 트라우마 경험 이후 이를 충분히 다루고 상실에 대해 애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허락되지 않을 때 사건에 대한 재경험, 감정적 각성, 기억과 감정의 회피, 지나친 편향된 지각으로 자기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서 무기력하고 우울해진 사람들은 이분법적 사고나 과잉 일반화 등의 인지적 오류를 가지게 되는데 어떤 문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한쪽으로 ‘귀인’(歸因, attribution)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또다시 한국 사회가 슬픔과 아픔 속으로 직면하는 ‘이태원 참사’(2022.10.29.)를 경험한 직후이며, 우리 사회가 조금은 성숙했다고 여기지만 정치를 포함하여 여전히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금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식민, 전쟁, 분단, 민주화 등의 일련의 경험들은 일종의 ‘빅트라우마’로서 한 인간으로 볼 때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를 돌아보고 회복할 기회도 없이 우리는 잘살기 위한 생존과 무한경쟁으로 뛰어들었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과 같이 사회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취약한 감정 체계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으로 경험한 트라우마는 ‘세대전이적’ 특성을 갖게 되는데, 즉 과거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체험적으로는 아무 관련성이 없는 후세대들도 비슷한 반응에 휩쓸리며 공동체 전체가 병리적 현상으로 극단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급성 증상이 아닌 역기능적 현상이 사회체계 속에 안착되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방식을 보이는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 관한 연구에서도 대학살의 직접 경험이 없던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들도 상당히 비슷한 증상이 내재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생존자들의 자녀에게 전수된 고통의 기억들은‘경험 없는 기억들’로 경험과 기억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후 새로운 경험들이 삶에 통합되지 못하고 갇혀 상장이 멈춰버리고 되면, 위험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우리 신경계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조그만 일에도 불안으로 날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안정화되지 못한 채 극복할 겨를도 없이 생존으로 내몰렸던 부모 세대의 처리되지 않은 아픔과 갈등, 불안과 무기력이 세대 간에 고스란히 전수되는 모습을 우리에게서도 보게 된다. 이는 오히려 직접 경험자들보다 더 큰 무기력감을 주는데 인과관계를 잘 알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쟁 세대가 지나가고, 부유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아무는 회복 탄력성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더 암울해졌다. 어쩌면 다루어지지 않은 고통과 상실들은 여전히 답을 찾아서 희생양을 제물로 바쳐야만 끝날 것처럼 서로 으르릉대며 편 가르기를 하며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적대적 대치, 진보와 보수의 끝없는 정쟁, 남과 여의 혐오, 금수저와 흙수저 등의 편 가르기와 비난하기를 동원해서 본질보다는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본질을 다루는 것은 진짜로 아프지만, 치유로 가는 온전한 고통 이후 회복을 가져오지만,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외면하는 방어적 고통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이 핵심을 피해가는 방식이다. 상식이라는 공동 이해를 구축하기보다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패배한다는 아직도 전쟁의 감각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기독교 공동체는 역사가 지닌 아픔과 고통에 대해 진지함보다는 기능주의적이고도 손쉬운 길의 한쪽 편에 서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보아야 하겠다. 사회체계의 일부로서 교회도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확장되어왔다. 그러나 보다 큰 영적 세계의 힘에 의지하여 고통과 아픔을 받아내고 공감하는 안전한 장소로서 위로하기보다는 닫힌 체계로서 방어적 형태의 모방인 분열과 흑백논리에 익숙한 모습으로 오히려 기독교의 성장조차 한쪽에 기대어 이분법적이고 율법적인 방어를 답습해온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교회가 이러한 아픔을 담아내고 함께 애도하고 공감하는 보듬어주는 공간이 되어주기를 기대하지 않은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트라우마로부터 수용, 용서, 변형, 창조적 회복이 일어나기까지 본질을 벗어나 떠도는 아픔을 끌어안기 위하여 기독공동체는 지난 시절 성장을 그리워하며 더 뛰려고 하기보다는 잠시 그 아픔에 머물러서 돌아보아야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의 참된 회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그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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