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소득 상위 10% 계층이 차지한 비중은 1990년대 전반 35%를 밑돌다가 2021년까지 46%로 늘어 미국의 45%를 넘어섰다. 이러한 양극화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종교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우리 사회 지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오랫동안 관련 연구와 현장 활동에 힘 써온 청치철학자 김선욱 교수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시선으로 그 양극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일시 : 2022년 11월 4일(금) 오전 10시 30분
- 장소 : 숭실대학교 베어드홀 부총장실(406호)
- 인터뷰어 : 윤헌준 (숭실대 기계공학부 교수)
- 사진 & 정리 : 석종준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윤헌준 : 정치철학자로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 논제가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선욱 :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 문제는 실제로 심각하지요. 평범한 시민들이 이를 구체적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기란 쉽지 않지만, 체감적으로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비싼 외제 차나 고급 차를 길에서 많이 볼 수 있죠. 고급 외제 차와 사고가 났을 때는 문제가 심각해지니, 이를 대비하는 자동차 보험료를 별도로 지불하기도 하지요.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내용은 저와는 너무나 먼일인 것 같아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오징어 게임>의 설정에 대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큰 공감을 느끼게 되었죠. 이런 식의 경험들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양극화 문제에 대해 각성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헌준 : 그렇다면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이 양극화 문제는 어떠한 관계와 의미가 있을까요?
김선욱 :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있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질 않아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면에서 불평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난 것은 그나마 이 사회가 민주화되고 또 사회 구조를 상당히 민주적으로 이끌어 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라는 기독교적 가르침을 진리로 믿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곧 우리가 믿는 신앙의 정체성과 본질적으로 연관이 됩니다. 이 가르침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기여해 온 바가 큽니다. 이 점이 오늘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죠.
윤헌준 : 교수님은 우리 사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을 번역하셨고 또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명강>,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등을 직접 감수하셨는데요. 이 책들은 왜 인기가 높았을까요?
김선욱 : 하버드대에서 명강의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사상이 특히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에 나왔을 때부터였어요. 그 시점은 미국의 2007년 리만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적 흐름을 따라서 우리 사회도 중산층이 약화되고, 대기업은 성장하는데도 중소기업은 총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이 전개되었지요. 이때 연구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사회적 불평등, 양극화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시민들도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의 경우, 우리 사회가 돈이 지배하는 시장사회로 변모하면서 사태의 본질이 돈에 의해 부패하는 문제들을 적절히 지적하였죠. 장기매매가 가능한 사회라면 신체의 존엄성은 질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죠. 이런 질적 변화가 부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정하다는 착각>(2020)을 통해서 능력주의 문제를 다루면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샌델은 이 시대가 고민하는 문제를 거대 담론으로 잘 연결해서 풀어가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 분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가진 유교 문화 전통, 특히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많은 종교인이 ‘정의’, ‘사회’, ‘공동체’, ‘사랑’ 같은 거대 담론에 좀 더 익숙한 문화적 배경하고도 잘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합니다.
윤헌준 : 교수님께서는 ‘정의’, ‘용서’, ‘자유’, ‘판단’ 그리고 ‘정치와 종교’ 등의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오셨고,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을 통해서 현장에 맞닿아 행동하시는 그리스도인 지성이시기도 하신데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김선욱 :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0년에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한 뒤, 각 경찰서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가 붙었어요. 친구들과 우리나라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를 한참 이야기하다가 도달한 결론이 ‘정의사회구현’이어서 함께 웃어버렸어요. 전두환이 사용한 구호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말로써 본질을 흐리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지난 10·29 참사에 대해 ‘사고’냐 ‘참사’냐, ‘사망자’냐 ‘희생자’냐를 가지고 말장난이 있었죠. 참사 직후에 숭실대는 “이번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하신 모든 분께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추모의 글을 학교 미디어 보드에 일주일 내내 올렸어요. 흥미로운 점은, 그 글이 일주일 내내 올려져 있는 것을 마치 정부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이해한 어떤 분은 “숭실대 다시 봤어.”라고 하더군요. 이것은 단순한 추모의 글을 정치적 진영 논리로 읽은 것입니다.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지요. 우리 사회에 진영 논리가 너무나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말을 통한 의식 조작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면, 대중의 의식을 언어로 조작하려는 시도가 히틀러에 의해 많이 이루어졌어요. 가령 ‘안락사’라는 말은 히틀러가 같은 게르만 민족 가운데 장애인이나 정신지체인들을 제거하는 사악한 행위를 숨기기 위해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언어와 실체는 달랐고,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실체를 은폐하여 의식을 조작하는 행위가 히틀러 치하에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기윤실’ 활동을 하면서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라는 구호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시민이기도 하죠. 그리스도인들도 세속의 일에 대해 ‘정의’, ‘용서’, ‘자유’, ‘정치와 종교의 관계’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회적 책임이란,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며 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인 지성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서 신앙적인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윤헌준 : 그렇다면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가야 할 어떤 구체적 책임 의식이나 소명의 자리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선욱 : 오늘 대화의 주제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이른바 뉴노멀 시대로 급속히 접어들었잖아요. 이제 미래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노동력이나 생산 보다는 IT가 되었고, 이런 사회적 변화는 우리의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승자독식이 정당화되며, 계층이동이 지극히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떤 빛을 던져줄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냐가 우리의 문제가 되지요. 그 답이 사실은 성경 말씀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노숙자에게 필요한 가장 단순한 필요를 채워드리고, 주위의 가난한 이웃에게 겨울에 연탄을 갖다 드리는 등의 선한 역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시대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그에 맞는 처방을 고민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 없이는 빈곤으로 자살을 선택하거나 미래의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정확한 인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실천을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그리스도인 지성들은 각자 전문성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섬길까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윤헌준 :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교육, 고용의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해지고 또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등 양극화 논제도 부상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법에 될만한 시급한 정책적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선욱 : 정책적 과제는 기본적으로 정치 문제잖아요. 정치도 양극화가 심하지요. 최근 우리 대학의 수요가족예배에서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님께서 재밌는 말씀을 주셨어요. “요즘 보수는 진보를 증오하고, 진보는 보수를 경멸한다.” 딱 현재 모습이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함께 추구하는데요. 이 둘은 서로 역동적 관계에 있습니다. 함께 하면서도 서로를 제어하는 장치로 작동하지요. 민주주의에는 한 사람 한 표라는 평등 의식이 있고, 자본주의에는 일원에 한 표라는 평등 의식이 있지요. 서로가 지향하는 평등과 자유는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는 탐욕스럽게 약자를 누르고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탐욕의 세상을 제어하는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자체가 양극화 문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고요, 구조적 변화를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정치는 진영 논리가 너무나 강해서, 그 어떤 주장이든 진영으로 갈라치기를 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때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현재의 시민 사회 운동도 마찬가지로 진영 논리에 깊이 함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복지, 기본소득, 토지 공개념 같은 정책적 과제와 연결된 개념들을 논점화시키지 못할뿐더러, 그런 주장이 모두 진영 논리에 휘둘리고 있죠. 이처럼 꽉 막힌 상황, 뭔가 막다른 골목을 마주친 상황에서 종교인들, 특별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시민입니다. 이들이 시민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극단적으로 날이 선 대립을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 안에 대화를 통한 공존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용서’라고 봅니다. 사실 이 단어는 쉬운 단어가 결코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정치적 양극화 상황을 그래도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용서’라고 봅니다. 용서 담론을 깊이 묵상할 때 정치적 대치 상태를 열어낼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으로서 정치적 대립을 화해와 공존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비롯해 우리가 봉착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헌준 : 코로나19 이후 대형 교회보다 중소형 교회가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양극화 문제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요.
김선욱 : 교회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 역시 기독교 공동체 밖이 아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 해법의 동력은 헌금 같은 물질이 아니라 말씀에서 나와야지요. 종교학자 길희성 선생님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우리의 의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과제를 해결할 때 대상을 향하여 집중하는 의식을 ‘대상의식’이라고 합니다. 대상의식이 하는 것은 일에 대한 몰두이지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의식입니다. 이것을 ‘자기의식’이라고 하죠.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할 때, 돌아보는 의식과 돌아보아지는 의식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자기의식이고 후자는 대상의식입니다. 이 둘은 같지만 다릅니다. 같은 자아의 의식이지만 스스로를 교정하고 경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의식인 것이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서 ‘생각은’ 자기를 돌아보는 의식이 하는 생각을 말합니다. 교회의 양극화 문제의 해법은 결국 같은 말씀 안에서 하나인 교회들이 서로 소통하고 갈등해야만 해결된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의 교회들 사이의 소통과 갈등들이 지금은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나인 교회가,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회들 사이의 소통을 통해 자기반성을 스스로 이루어갈 때만, 교회가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해결자가 될 것입니다.
윤헌준 : 그리스도인 정치철학자로서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양극화 문제 극복과 관련해서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선욱 :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국가가 하지 못한 것, 즉 주위를 보살피는 일을 나름 잘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교회가 섬길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께 이 부분에 대해 계속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는 전문성을 가지신 분들이 많고 사회적 통찰력을 갖춘 분들도 많습니다. 이분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갖고 교회 내외적으로 섬길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개별 교회 단위를 넘어서는 싱크탱크도 필요합니다. 목회자들은 말씀의 깊이와 목양의 전문가들이시지만, 비목회자 전문가들은 세속을 이루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니, 이런 전문성들이 서로 만나 섬길 기회가 활발히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윤헌준 : 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전해 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선욱 : 사실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기성세대가 지금 너무 안 좋은 환경을 물려주었다는 미안함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보다 지금이 살기가 훨씬 낫다고 생각됩니다. 1980년대보다는 1990년대가 나았고, 1990년대보다는 2000년대가 나왔고, 지금 2022년이 그래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역사상 가장 살기 좋은 이 시대에 있다고 보이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사회적 불평등이나 양극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 시대 청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기후위기도 너무나 촉박한 문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희망적인 꿈을 꾸기가 힘든 사회를 만들어 놓아 미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하고 싶은 것은, 많이 듣는 대화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MZ 세대나 알파 세대가 자란 환경은 제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서, 대화를 하다 보면 제가 어느 순간에 꼰대가 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많이 듣고 좋은 것을 많이 가져가는 게 중요하지, 너희 말을 내가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런 전형적인 꼰대 태도를 반성합니다. 젊은 세대들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화를 좀 더 많이 하려고 애를 써 보겠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