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봉준호를 넘어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와 <기생충>(2019) 만큼 현대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은유적으로 잘 묘사한 영화도 없다. <설국열차>에 묘사된 머리칸과 꼬리칸은 극단화된 삶의 모습을 미래의 종말적 상황 가운데서 잘 묘사했다. <기생충>은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최상의 이층 주택이라는 공간의 배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빈부 격차에서 오는 갈등과 기생적 공존을 압축적이며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봉 감독이 묘사한 양극화된 사회의 갈등을 다룬 영화들의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첫째는 양극화의 기준을 경제(물질)에 맞추고 있는 점이고, 둘째는 갈등이 평화적이며 발전적인 공존으로 변화하기보다는 충돌로 이어져 파국을 맡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봉 감독을 넘어서서 극단의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점을 제시하는 새로운 영화의 출현이 필요함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양극화 사회의 의미있는 변화를 담은 영화
김창주 감독의 영화 <발신제한>(2021)과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2021)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극단적 갈등을 두 가지 다른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발신제한>은 드라마로 제작된 상업영화인 반면 <학교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다. 드라마는 스릴러나 액션 등과 같은 대중이 선호하는 방법을 동원하여 사회문제를 부각시키는 장점이 있다. 과거의 시간 속에 잊혔던 문제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그에 비해서 다큐멘터리는 소재주의를 선택한다. 즉 원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이나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연출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해를 촉구받는 형식이다.
<발신제한>은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2015)을 각색하면서 2011년 서민들의 꿈을 앗아가 버린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입힌 사회성 짙은 영화다. 돈 많은 고객을 관리하는 PB(프라이빗 뱅크) 센터장 성규(조우진)는 두 아이를 자신의 고급 SUV에 태우고 출근하는 길에 테러범(지창욱)으로부터 걸려온 발신 번호 제한표시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거액의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자동차 시트 밑에 설치한 사제폭탄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는 성규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만다.
불완전 판매로 인한 피해자의 단순한 복수극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가해자 성규의 눈물 어린 반성과 용서를 비는 언행이 이루어지고 법적인 책임을 지는 태도가 드러나는 점에 있다. 그것도 자신의 딸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정직함으로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은 혹시라도 극단적 갈등에서 입게 되는 피해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1조 원이 넘는 피해액에 3만8천 명에 이르는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으나 아직도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
양극단의 갈등을 사랑으로 극복한 어머니들
<학교 가는 길>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건립을 둘러싼 지역사회와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갈등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특수학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애아 학부모들과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지역에는 안된다.” 혹은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라는 주장을 하는 지역사회와의 첨예한 대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양극단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장애아 어머니들이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지역주민 앞에서 무릎 꿇고 사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에 앞에서 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리며 어떻게든 이해를 구하려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특수학교 설립보다는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사항이면서 생활에 편리한 의료시설 건립을 찬성하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지역이기주의가 등장했다는 판단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님비현상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는 교회의 사회적 사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왕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지혜롭게 해야 할 일이다. “다툼이나 허영”(빌 2:3)이 아닌 지역사회도 함께 품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타적 존재가 누리는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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