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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아를(Arles)에 머물던 시절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잦은 병치레와 고갱과의 불화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빈센트는 17C 네덜란드 화가들의 ‘트로니’(tronie) 전통에 따라 인물화를 즐겨 그렸다.
이런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자장가 - 요람을 흔드는 사람>(La Berceuse, 1889)이다. 그는 아를의 우편배달부 조제프 룰랭(Joseph Roulin)의 아내 오귀스틴 룰랭(Augustine Roulin)을 모델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꽃무늬 벽지를 배경으로 흔들남프랑스 아를(Arles)에 머물던 시절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잦은 병치레와 고갱과의 불화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빈센트는 17C 네덜란드 화가들의 ‘트로니’(tronie) 전통에 따라 인물화를 즐겨 그렸다.
이런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자장가 - 요람을 흔드는 사람>(La Berceuse, 1889)이다. 그는 아를의 우편배달부 조제프 룰랭(Joseph Roulin)의 아내 오귀스틴 룰랭(Augustine Roulin)을 모델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꽃무늬 벽지를 배경으로 흔들의자에 앉은 룰랭 부인은 강인한 어머니요 아내인 동시에 프로방스의 농부이기도 했는데, 룰랭이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 다섯 가족을 부양해야 했으니 밭일을 하여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했던 것이다. 빈센트는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룰랭과 부인, 세 아이(아르망, 카밀, 마르셀)에게 모두 초상화를 그리는 관심을 보였고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빈센트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새로운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표현한 적이 있다. “나는 후광으로 상징되던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빛깔에서 뿜어져 나오는 참된 광채와 떨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그런 영원의 흔적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구나”(1885.9.2)
고흐는 평범한 농부와 이웃에서 ‘영원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오귀스틴이 바로 그런 초상화에 어울리는 모델이었다. 빈센트에게 그림은 이웃에게 내미는 사랑의 표시였다. 그는 늘 힘들고 약한 사람들이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이름 없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그려서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이다”(1880.9.24)고 다짐한 바 있다. 고흐의 관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신비한 매력으로 향했다. 그의 인물화가 권력자나 지배층이 아닌 농부와 광부, 직조공, 우편배달부, 노인이나 아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신념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뒷받침해준다.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솜씨로 탄생된 특별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자장가(요람을 흔드는 사람),캔버스에 유채,92.7x73.8cm,1889,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의 비밀은 그녀가 잡고 있는 끈에 달려 있다. 그녀는 지금 보이지 않는 요람을 붙들고 있는데 우리는 그녀가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장엄하고 무한하며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침에 잠에서 깬 어린아이의 눈망울과 요람 위에 비친 햇살을 보고 옹알거리거나 소리내어 웃는 아이에게서 바다보다 더 깊고, 더 무한하고, 더 영원한 무언가를 볼 수 있다.”(1882.7.2) 이처럼 아이에게 갖는 감정은 각별한 것이었으며 빈센트는 엄마와 아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성스러움을 발견하였다.
이 그림에 대해 빈센트는 먼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어부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오귀스틴이 잡고 있는 끈이 바로 ‘위로의 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다의 선원이 해변의 여성을 생각할 때 꿈꾸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1889.3.29) 선원이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그림을 보며 아내를 생각하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빈센트에게도 ‘위로의 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감상자 역시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유년 시절 어머니 품속에서 들었던 사랑의 자장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빈센트의 <자장가>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가 런던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웃의 모습을 화폭에 담을 때까지 상존하였던 요인이 있다. 그것은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이었다. <자장가>에서 그가 들려주는 것은 위로의 메시지도 있겠지만 그가 접한 ‘평범한 사람의 초상’을 어느 권력층 못지않게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웃이 우리가 섬길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한번은 고흐가 네덜란드 출신의 동료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Anthon van Rappard)로부터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그의 이야기가 거의 모든 방면에 걸쳐 몸살을 앓으며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에게도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기관(器官)의 혈관’에는 무서운 ‘증오’라는 이름의 독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입장이 다르면 둘의 관계가 틀어지고 돌연 ‘동료’에서 ‘적’으로 바뀌니 말이다. 이런 정도이면 우리가 부드러운 심장으로 살아가며, 우리 사이에 벌어진 심연을 건너는 다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된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하나님, 자신, 이웃의 ‘신실함이 왜곡되고 배제’되는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대방을 향해 나가는 것, 곧 ‘타자를 품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동료 인간을 품음으로써 신실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센트의 기독교적 인생관은 ‘타자를 품는 일’, 즉 ‘사랑의 법’이 ‘미움’을 이긴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으며 사랑은 ‘관계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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