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다시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태원 거리에서 159명의 귀한 생명을 거리에서 또 잃었다. 인파가 몰릴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참사 발생 3시간 전부터 사고를 우려하는 신고 전화가 있었음에도 질서유지를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것이 참사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피해자 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었다. 이번 참사의 피해자 유가족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참사 이후에 충분한 위로와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유가족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나와 왜 사고를 막지 못했는지, 누가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묻고 있다. 참사도 비극이지만 참사 이후의 가족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더 큰 비극이다. 자녀를 질병으로 잃어도 그 고통은 평생을 가게 되는데, 길거리에서 자녀를 잃은 고통에 더해, 정부의 무책임에 분노하고 사회적 조롱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사회적 안전에 대한 정부 역량도 부족하고,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도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참사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참사의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지기가 필요하다. 철저한 조사는 두 가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는 피해자의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위함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럽다. 자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극심한지, “야수가 심장을 파먹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나 불분명한 사고 원인, 사실 은폐, 책임회피의 모습은 충분한 애도를 가로막는 것을 넘어 분노를 유발한다. 이해되지 않는 상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사람을 괴물로 변하게 한다고 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고의 과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고 사고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참된 애도와 회복의 시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진실의 규명은 용서와 회복의 출발이다. 값없이 주어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도 자신의 죄책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나 그렇지,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으로 죄값을 치러서야 비로소 회복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힘든 이유도 가해자인 일본의 진실 부정, 축소, 은폐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가 발생한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제노사이드 범죄에 가담한 사람을 찾아내서 재판대에 세우는 이유도 그것이 용서와 회복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마땅한 책임 없이 과거사를 덮는 것은 갈등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며, 진상규명과 마땅한 책임을 묻고 나서야 비로소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진상규명과 마땅한 책임을 묻는 것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사고는 예방이 먼저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이 만든 국가는 완전하지 않고, 사회적 참사는 예방이 최선이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실패로부터 배워서 불완전한 국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이 건강을 잃었을 때 여러 건강 검진을 받고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점검하며 보다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과 부족한 시스템을 철저히 조사하고 점검해야 국가 시스템을 개선하고 사고 예방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수 7:25-26)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함께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의미 있는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기념해서 기억하게 한다. 요단을 건널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언약궤 앞에서 요단강 물이 멈추게 한 사건을 기념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리고 땅에서 취한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아간이 어겨 여리고 정복 전투에서 패배한 사건도 돌무더기를 쌓게 해서 기억하게 한다.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기억해야 후세대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리석은 과거로부터 배우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는지, 참사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기억해야 한다. 이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위로를 넘어 후세대에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일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뻔했던 상황에서 미리 질서유지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은 판단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압사 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를 받고도 긴급하게 대응하지 못한 판단은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피해자 구조가 힘들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서 남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후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고,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배워갈 수 있다. 반대로 참사를 축소·은폐하고 슬픔 중에 있는 이웃을 대했던 국가의 태도에서도 후세대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체득하며 자라게 된다. 이는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다. 자랑스러운 기억도, 부끄러운 기억도 그대로 학습되기 마련이다.
참사와 참사 이후 수습의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묻고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슬퍼하는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동일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유가족들과 참사를 아파하는 시민에게 ‘참된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이 길에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고 동참하길 희망한다.
* 김동선. (2022),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 두란노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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