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국가기관의 작동방식에 따라 이런 비극도 가능하다는 놀라움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이제 벌써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사후조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작년 12월 초만 해도 위로받지 못한 희생자 유족들을 함께 안타까워하며, 피할 수 있었던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감되는 조치가 제시될 것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전후의 사정들이 드러날 것은 거의 드러나고 눈치챌 것은 다 눈치챈 상황에서 기대는 냉소적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책임과 권한을 쥔 인사들이 참된 위로를 위한 진실과 신원(伸冤) 보다는 무마와 망각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사 상황에 대한 피상적 해명은 덮이지 않는 사실과 신랄한 통찰에 의해 논박되고 있다.
국가의 부재 vs 민첩한 국가
이번 참사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일차적 반응은 ‘국가의 부재’ 또는 ‘정부 시스템의 작동 불능’이었다. 그러나 사후처리와 전후 상황이 드러나면서 국가는 부재한 것이 아니라 민첩하고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참사 발생으로 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기운이 일어나자마자 정부는 즉각 애도 기간을 선포한다. ‘추궁이 아닌 추모의 때’라는 수사언어가 구사되었다. 한편, 서울 시청 직원들은 유족들을 맨투맨으로 밀착 보호하였다. 유족들은 의문과 아픔을 나눌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장례는 각각 개별적으로 지체없이 진행되었다. 이름도 영정도 없이 설치된 분향소는 ‘애도의 포괄적 추상화’였다. 시민들은 누군지 모르지만, 관념의 인류를 사랑하는 자같이 되고 말았다. 경찰이 동원되었어도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던 행정안전부 장관은 유족명단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무능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 참사는 불가항력이 아닌 정부의 선택이었음이 드러난다.
10.29 당일의 경비 임무는 두 가지였다. 정치적 집회시위와 할로윈 축제. 서울경찰청의 기동대 병력은 집회시위 경비에만 배치된다. 각별히 대통령 용산 집무실 진입로에 견고한 차단선 구축을 명하며 병력은 계속 추가배치 되었다. 현장 경찰들도 의아해할 정도였다. 한편, 용산 경찰서 정보과에서는 할로윈 경비 계획서가 기안되었지만 과장에 의해 기각된다. 기안자인 계원이 혼자라도 나가보겠다고 하지만 묵살된다. 서울경찰청은 “각 서에서 알아서 하라”였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경찰서는 연례적 임무였던 할로윈 대비는 잊고 집회시위 대비에 전력해야 했다. 즉 계획수립과 실무 단계에서 이태원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포기한 것은 선택이었다.
과거 정부의 ‘코드 레드’(code red)와 현재의 지휘 책임
5공을 겪은 세대에게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다. 1982년 이른바 ‘봉황새 작전’. 독재자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전두환의 제주 방문 경호작전을 위하여 특전사 707대원들을 배치하였다. 극도의 악천후로 팀장은 작전 변경을 요청하였으나 보스의 심기까지 경호하는 측근 실세는 강행을 명령한다. 결국 수송기의 추락으로 53명의 대원이 모두 사망한 바 있다. 그에게 코드 레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권력자의 경호를 위하여 얼마든지 포기될 수 있다, 아니 포기하라”였다.
이태원 참사 사후 조치에서 나타나는 전체 경찰조직의 방만함은 개인적인 기강해이로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저녁 시간 집회시위가 마무리되었을 때, 경찰 지휘부는 자신들이 마땅히 배치해야 할 병력을 보내지 않은 이태원이 어떻게 되었을까 염려했어야 했다. 이태원 파출소 직원들이 응대조차 못할 112 신고가 수십 건이나 될 만큼 중과부적의 곤경 속에서 애태울 때, 서울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 모두 시위 관리가 무탈한 것을 만족한 임무 종료로 여기고 있었다. 정위치 하지 않았던 서울경찰청의 상황실장과 용산경찰서의 상황실장도 역시 동일한 자세를 보인다. 이처럼 전 조직을 관통하는 권력 해바라기의 행동 양식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얼마든지 포기될 수 있다”라는 내부 지침, 즉 비공식적이나 명시적인 지침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묵시적 코드가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조직의 문화와 가치, 심리적 관행, 내부적 작동원리를 만드는 것은 법적 규정 관리를 넘어선 리더의 영향력이고 정무적 책임이다. 그럼에도 지금 대통령은 “정무적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지 않소?”라고 퉁친다. 그는 이 코드가 자신을 지켜주는 현실적 방어기제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미국 대통령 닉슨을 사임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우드워드(Woodward) 기자도 이 점을 발견했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라는 영화에 나오듯이, 모든 국가기관이 국민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대통령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현실은 다르다. 성서는 말한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 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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