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다시는 저와 같이 자식을 먼저 잃는 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굽어 살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50여 일 되던 즈음 개최했던 그리스도인 추모기도회에서 한 희생자의 아버지가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하며 높아진 목소리로 발언을 하다 이와 같이 기도하고 단상에서 내려가셨다. 그리고 이후에는 ‘4.16 합창단’이 올라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메시지를 ‘네버엔딩 스토리’와 ‘잊지않을게’라는 노래에 담아 불렀다. 나는 차마 눈물 흘리는 것도 너무 민망하고 미안하다 생각을 하며 쓰리고 먹먹해진 마음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바로 얼마 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을 잃은 아버지가 말도 못할 고통 속에서도 앞으로 다른 이들은 이러한 고통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수년 전 발생한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이 또 다른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참사 희생자의 가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또 다른 희생자이다. 그리고 사회적 참사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크고 작은 충격과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참담한 사건이 일어난 뒤, 이웃 시민으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슬픔과 황망함에 일상을 잃은 유가족, 불안과 트라우마를 겪는 청년을 포함한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사회 곳곳의 고통과 슬픔의 현장에는 ‘어떤 위로의 순간’들이 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갈등 속에서 몸과 마음이 상한 주민들, 사측의 부당한 해고로 인해 길거리에 나와 단식하던 노동자들, 자연과 평화의 아름다움을 지키려 천막과 보트를 가지고 철조망과 군대와 맞서는 제주 활동가들, 사고와 고립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들, 그 밖에도 여러 이유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은 누군가 잠깐이라도 외로운 자리를 함께 지켜주고,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 자신을 대신하여 기도해주고, 한마음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쳐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특히 상실과 죽음의 고통을 맞게 된 이들에게는 함께 애도하고 중보하는 심리적, 영적 연대가 중요하고, 그 고통이 사회적 구조에 기인하거나 개인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공동체적 책임으로 연대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기윤실’과 같은 기독교 시민운동단체는 그때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몰인정한 어떤 이들이 ‘그만’하라고 하는 기도회나 기자회견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이유이다. 그곳에서 위로와 회복의 순간, 책임과 변화의 물꼬를 발견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 땅에 인애(仁愛)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신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인애를 그 백성들 또한 지켜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가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고,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 복이 있으며, 사람들에게 빛을 비치게 하는 착한 행실로 하늘에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다. 틈 없이 계속해서 신자들과 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알려주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여지없이 인애와 위로를 행하는 순종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이를 영영 보지 못하게 된 이의 그 아득한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슬퍼하고 있는 이의 상실과 좌절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마음을 기울이고 그가 고립되거나 숨게 되지 않도록 손을 잡되 그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 희생자들의 삶의 흔적과 그 존재의 존엄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과정의 진실을 밝히 규명하고 책임자가 책임을 지도록 촉구하며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 슬픔을 당한 이웃이 소외되거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를 넘어 하늘의 위로가 전해지게 하는 중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참사 이후 많은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위험하고 잔혹한 곳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번 참사는 국정조사특위 활동에서도 나타나듯 일어나지 않거나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고, 참사를 다루는 정치인들과 행정 책임자들은 상황을 회피하거나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변명하며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심각하게 직시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으며, 일부 시민들은 청년들이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을 방문한 것 자체를 비난하거나 청년 세대 전체를 싸잡아 폄훼하기도 했다. 참사 자체의 충격만큼이나 참사 이후 이러한 국면에서 청년들이 느낄 충격은 거대한 힘으로 이들을 위축시키고 절망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 나라와 공동체에서 오늘의 안전함과 내일의 희망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는 경험은 당연하게도 청년들의 불안과 우울, 불신과 외로움을 증대시키고,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만이 최적의 생존 방식이라고 잘못 믿게 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그리고 참사와 관련 있는 이들을 뉴스와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 또는 무리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각 존재마다 이름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으며 사연과 꿈이 있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서로 모른 체하거나 사라질 일로 여기지 않고 동료 시민, 이웃에게 무정하게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과 교회가 먼저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고, 낮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존중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존중하며 연대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선한 이웃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착한 행실이 빛처럼 퍼져 대한민국 사회가 불신과 불안으로 뒤덮인 곳이 아닌 서로를 향한 인애와 연민과 연대로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면, 한국 교회는 다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백성으로 칭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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