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오래된 노래가 있다. <아니 벌써> 이 노래를 떠올리니 귓가에 흥겨운 리듬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 벌써! 내가 은퇴한 지가 2년이 되어가다니. 그렇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때가 1993년도 여름. 귀국하자마자 ‘강사 자리’ 구하느라 동분서주, 혹 어느 학교에 초빙 공고라도 나면 전국을 멀다 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렇게 7년 세월이 흘렀다. 아, 당시에 박사학위를 하고 교수에 임용되지 못한 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여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언약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여시는 길이 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비정규직’의 시간을 인내했다. 간간히 의심이 들었다. 믿음은 변명이고 내 의지를 붙잡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희망고문’을 하는 것은 아닌지. 왜 내가 ‘정규직’ 교수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재야학자로 감사하며 학문의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던 것처럼.(히 11:8) 내 경우도 그러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겸손하게 무릎 꿇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광야 생활이 아니라 말할 수 없으리라. 강사 기간이 길어지고, 아이들은 자라나고, 가계의 씀씀이가 절약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다른 길로 가게 될 여러 유혹이 있었지만, 학문의 길로 부르신 주님께서 어떤 부르심으로 인도하실지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를 알게 되었다. 당시 손봉호, 이만열, 김정욱 교수님들께서 활약하고 계셨다. 강영안, 신국원 교수님의 안내로 가입하여, 어느 해에 ‘기학연’ 연구원으로 공식 경력을 쌓는 은혜까지 입었다. 실제로 독일 유학을 통해 알게 된 ‘문학과 신학 통합연구’, ‘기독교 문예학’, ‘기독교 문화연구’ 등은 융합연구라는 분야로 공부는 하였지만, 광대한 학문의 숲에서 첨예한 학문성과 깊이를 정립하지 못하고 ‘어쩌다’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방대한 분야였으며 또한 귀국 후 대학에서 만난 강단 현실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이때 나의 삶과 학문을 믿음 안에서 다시 정립하게 해준 단체가 바로 ‘기학연’이었다. 이와 함께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의 양승훈, 조성표 교수님들과의 만남은 그리스도인 학자로서 비전을 가다듬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 참으로 귀한 계기였다. 여기서 웨슬리 선교사님의 ‘귀찮을 정도’의 도전은 나를 각성케 하였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선배님들과 동역자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현재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가 “삶과 경건, 신앙과 학문”의 기치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건실히 활약하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고 감탄하지 않으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아쉽게 여기는 점은, 일단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의 진급, 여기에 여러 성과와 실적(논문, 저술, 교육, 봉사, 취업 등)을 쌓아야 하는 ‘조직 사회’의 요구는 서서히 이기적 삶의 방식으로 변질이 되게 했다. 교수임용이 되면서 학교에 치중하게 되자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내의 협력 사역에 크게 힘쓰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또한 후배 학자들과의 창조적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안내하지 못한 과오는 정말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단체 안에 활동적인 분들이 많으신데 기독교 학문과 세계관의 넓은 세계에서 훌륭한 협동 작업이 더욱 활성화 되기를 기대한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IT, AI, 메타버스(Metaverse)가 삶의 구조에 깊이 관여한다. 인간 본연의 전통과 유산에서 그 본질이 뒤바뀌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신인류가 등장하고, MZ 세대는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거부하는 저항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일신 삼위일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구(舊)인류 급으로 취급된다. 그리스도인은 미개인, 신앙인은 야만인처럼 조롱당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우세종인 세기로 전환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비인간, 반인간의 세기적 전환점에서 믿음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생명과 소망의 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살아가며 증거할 것인가? 나라와 백성이 백척간두에 선 듯 흔들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위장된 평화를 걷어내고 어떻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어드릴 것인가!
그런데 아니 벌써!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그것도 정년퇴직 후 2년 차라는 명부에 등재되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일원으로 ‘청춘’의 삶을 다시 행진해 보고자 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기억에 남는 어록이다. 나는 고백하고 싶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다만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비전이 불붙고 있는 한 청춘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고뇌와 열정이 있는 한 청춘이다. 주님 은혜 안에서 영원한 청춘으로 푯대를 향해 전진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묵묵히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눅 13:33).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