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세기 기독교 세계관 철학자 중, 네덜란드의 헤르만 도여베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정립한 성경적 세계관의 바탕 위에서 피조 세계를 가장 일관성 있게 설명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철학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 면에서 그의 철학은 비판을 받았고 동시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사상은 반드시 한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대가의 사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곧 그가 씨름한 서양 철학 전체를 그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고 그가 기독교 철학자로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성경적이면서도 비판적 관점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신앙과 삶>의 ‘온전한 지성’ 지면을 통해, 먼저 도여베르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필두로 5회에 걸쳐 그의 사상과 영향에 대해 간략히 다루어 보겠다.
헤르만 도여베르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아브라함 카이퍼가 창간한 일간지 <더 스탄다르드>(De Standaard)와 주간지 <더 헤라우트>(De Heraut)를 구독하는 칼뱅주의 신앙 환경에서 자라나 암스테르담에 있는 개혁교회의 김나지움(Het Gereformeerd Gymnasium)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처음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카이퍼가 설립한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음악과 화란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낭만주의적 경향은 나중에 그의 기독교 철학 정립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가령 그가 괴테(Goethe)의 말을 인용하면서, 철학의 사명이란 “모든 것이 어떻게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가”(wie alles sich zum Ganzen webt)를 궁구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결국 철학이란 “전체에 대한 관점을 추구하는 것”(Filosofie is het streven naar een visie op de totaliteit)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성경에 있는 대로 “인간의 마음에 집중된 인격의 통일성”(de eenheid van de menselijke persoon, die geconcentreerd is in het hart)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법학을 전공하여 <네덜란드 헌법에서의 내각>(De ministerraad in het Nederlandsche staatsrecht)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17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헤르만 도여베르트의 기독교 세계관(1) - 생애와 사상
그 후 네덜란드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1922년 헤이그에 있는 반혁명당(The Anti-Revolutionary Party)의 연구센터인 카이퍼 연구소(Kuyperstichting)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4년을 근무하면서 도여베르트는 카이퍼가 가졌던 비전 즉, ‘신칼뱅주의 생활 및 세계관과 이것을 법, 경제 및 정치 방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초’(de grondslagen der zogenaamde neocalvinistische levens- en wereldbeschouwing in haar toepassing op recht, economie en politiek)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이 기간에 그는 나중에 그의 기독교 철학 체계를 세우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들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러한 연구 작업의 열매를 당시 그가 창간한 반혁명당의 기관지 <반혁명적 정치학>(Anti-Revolutionaire Staatskunde)에 일련의 논문들로 발표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카이퍼의 칼뱅주의적 세계관 및 신학 사상이 도여베르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카이퍼의 ‘신비적’ 명상록들을 읽고 나서 도여베르트는 사상의 종교적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카이퍼 연구소에서 자신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도여베르트는 1926년 자유대학교의 법철학교수로 임명된 후 거의 40년간 재직하면서 자신의 기독교 철학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나아가 그의 동료인 동시에 자형이었던 철학부 교수 폴렌호븐(D.H.Th. Vollenhoven)과 함께 1936년에 칼뱅주의 철학협회(Vereniging voor Calvinistische Wijsbegeerte)를 설립하였고 <개혁철학>(Philosophia Reformata)라는 학회지를 발간하면서 소천하기 1년 전인 1976년까지 편집장으로 섬겼다.
카이퍼 연구소에서 발전시킨 사상은 자유대학교에서 꽃을 피워 세 권의 대작 <우주법 철학> (De wijsbegeerte der wetsidee)을 1935부터 1936년까지 출판했다. 첫 권 서문에서 그는 “내 사상의 가장 큰 전환점은 사상 자체의 종교적 뿌리를 발견한 것이다. 성경이 모든 인간 생명의 종교적 뿌리라고 말하는 ‘마음’의 중심적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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