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다. 자동차와 핸드폰과 노트북을 누구나 보유하고 있고, 해외여행도 부담 없이 다니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은 줄지 않는 걸까?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집이 없어서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사람들, 심지어 노숙하는 사람들도 좀처럼 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어디 그뿐인가. 일하고 싶지만 괜찮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서 절망하는 청년들과 장년들이 상당하고, 가난한 노인들도 OECD에서 가장 많으며, 노동 소득으론 미래가 불안해 불로소득을 노리는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 갭 투기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엄청나다. 게다가 빈곤과 불평등 심화는 일국적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 원인이 뭐냐고. 빈곤과 불평등은 해결 불가능한 것이냐고. 이런 질문을 하면 늘 떠오르는 성경 본문이 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라는 말씀이다. 교회에는 이 구절을 근거로 빈곤은 어쩔 수 없다고 단정하는 그리스도인도 많다. 그래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정녕 가난한 자가 땅의 소출을 누리는 데 있어서 절대로 배제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빈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4-5).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말씀대로 살면 빈곤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이것에 답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역사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을 통해서 거룩한 나라, 즉 빈부와 신분과 격차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열방이 이스라엘을 본받아 전 세계가 복 받게 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제도를 주셨다는 것을.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고 그 사명은 다시 예수님의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은 교회에 맡겨졌는데, 초대교회는 이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 그 결과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는데(행 4:34),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실천을 박해 시대 내내 300년 동안 유지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제2의 가나안이라 할 수 있는 로마를 다스릴 권한이 교회에 주어진 상황인데, 안타깝게도 중세 교회는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중세는 가난과 신분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 암흑기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성경은 빈곤과 불평등 해결은 예수님의 피로 계약을 맺은 교회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교회는 상호돌봄공동체가 돼야 한다. 부채에 늪에 빠진 형제의 문제를,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성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 물론 바울의 가르침대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불로소득을 노리는 경제 행위는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죄’라는 점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에게 빈곤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그 문제와 씨름하는 단체와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가 상호돌봄공동체가 되고 빈곤과 불평등을 낳는 사회적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셔서, 이 나라의, 나아가서 전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데, 이렇게 믿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교회의 이 사명 감당은 철저한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명을 망각했고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의 법을 무시해왔으며 불법을 마구 저질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까닭에 국내적·국제적 차원의 빈곤과 불평등 해결은 결국 영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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