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빈곤은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다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빈곤이 어떻게 나와 이웃의 삶을 깊게 상처 입히는지를 절박하게 드러내는 말인 것 같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희년은행’은 부채 문제와 주거 문제로 고통 겪고 있는 청년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서, 청년들을 위한 대안 대출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7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현재 650여 명의 조합원이 6억3천여만 원의 기금을 모아서, 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3년 전에 광주의 스물한 살 청년한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불법사금융의 피해를 입은 청년이었다. 애초 100만 원을 빌렸는데, 한 달 반 만에 이자 포함 200만 원으로 부채가 갑자기 불어난 상태였다. 재무 상담을 통해 청년에게 대처법을 알려주었고, 사채업자와의 협상을 거쳐 청년의 빚은 원금만 상환 처리하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청년한테서 고맙다는 인사가 담긴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청년은 희년은행에 전화를 걸기 전에 안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큰 부담을 덜고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면서 연신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사실 100만 원, 200만 원이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액수는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청년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갔다. 그것은 액수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100만 원이 200만 원으로 불어나기까지 걸린 이 ‘한 달 반’의 기간 때문이었다.
앞으로 하루하루 지날수록 부채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불어날 것이다, 내일의 희망이 있을까? 미래를 내다보면 절망뿐인데 암담한 마음이 왜 찾아들지 않았겠는가? 청년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고, 빚이 청년의 인생 전체를 저당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가서 ‘희년은행’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부채 문제, 주거 문제 특히 이것이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라면, 이것은 단순히 빚 문제, 집 문제가 아닌 청년들의 미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미래 문제이다.”
청년은 앞날을 그리는 존재이다. 그 자신들의 생애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이 청년들이 그리는 미래상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청년에게 빈곤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이다. 빈곤은 미래의 절망에 따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청년이 빈곤하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할 수밖에 없다.
‘희년은행’ 사역을 하면서 만나는 청년들을 보면, 전에 빚 문제나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가 그 문제가 해소되거나 해결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자기 인생 진로를 진취적으로 설계하고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빚과 주거는 일상의 기본 조건을 좌우한다. 다달이 부채 상환에 시달리거나, 다달이 보증금 이자를 갚는다든지 월세 내기에 급급하다 보면, 도무지 미래를 진취적으로 설계해 나갈 에너지를 보듬어 가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생애 주기별 과제를 수행해나가는 데 발목을 잡히는 꼴이 돼 버리는 것이다.
빚 문제로부터 놓임을 받고, 주거가 안정적으로 해결된 청년들은 더 적극적으로 진학을 결심하기도 하고, 평소 원했던 진로를 모색하기도 하며, 취업 준비에 더 열성을 내기도 하고, 또 결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희년은행’을 만난 이후로 그렇게 변화된 일상의 소식을 전해 오는 청년들이 있어 반갑고 또 감사했다.
빈곤을 이야기하면 복지로 한정 지어서 생활비 일부를 보태주는 것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복지나 생활비 지원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것으로 생활을 지탱하는 힘을 지원받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런데, 청년들의 경우에는 좀 더 지속이 가능한 회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일상의 지반을 제공하는 데까지 관심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더 적극적이면서 총체적인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교회마다, 또 ‘희년은행’과 같은 사역을 하는 기관과 단체들이, 또 여러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힘을 모아서, 청년들이 빈곤에 머무는 일이 없도록, 또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교회는 늘 사회의 어둡게 그늘졌던 곳을 밝혔고, 오염되거나 변질된 영역을 정화해 나갔다. 지금 청년들의 미래 문제가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함께 뜻과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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