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빈곤 문제는 불평등이나 격차 문제와 같이 인류사회의 필요악처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던 문제였다. 사회과학이 발달하게 되면서 이런 문제들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그 근저에 있는 인과율을 하나님의 존재를 배제한 채로 ‘사회’라는 대상에 귀결시키는 경향이 생겨났다. 예수님이 그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자에 대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편이 낫다”(요 12:5)라고 말한 가롯 유다를 제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한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우리에게 있어 가난한 자들과 사귀어 나가는 일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한 일이다. 이는 어쩌면 현대사회 그리스도인의 신앙 좌표를 제시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여기서 일본의 홈리스 문제와 교회의 역할을 살펴보아, 우리들의 삶 속에 침투해오는 빈곤 문제를 사회문제로 간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 가운데서 이웃의 가난과 어떻게 사귀어 나갈지에 관련하여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
일본의 홈리스 문제의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일본 도쿄에는 역이나 보도, 공원, 하천, 다리 밑 등 공공시설에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노숙인들이 다수 있다. 그 수가 일본 전국에서 2003년에 약 2만5천 명으로 파악되었지만, 2022년에는 약 3천5백 명으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넷카페 난민’과 같이 상업 시설에서 지내고 있어 파악이 어려운 잠재적 홈리스들도 다수 존재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고립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그 가운데서 사회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가려진 이웃”이다. 병든 이와 죄지은 이, 그리고 억눌려 사는 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일상을 나누었던 예수님은, 분명 이런 홈리스들을 잔치에 초대하셨을 것이다. 천국에서 식사하는 이들은 참으로 복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리고 지금껏 필자가 홈리스 지원의 현장에서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교회의 홈리스 지원의 실태와 교회의 과제 및 역할에 관해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일본 동경의 홈리스 문제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실업 문제와 동시에 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언론의 보도뿐만 아니라 학계와 행정부처에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사회조사가 이루어졌고 2002년에는 이와 관련된 법안도 제정되었다. 이 시기와 맞물려서 교회에서도 그들의 어려움과 함께하고자 하는 선교 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도쿄 신오쿠보에 위치한 한인교회인 동경중앙교회에서는 2002년에 ‘희망선교회’를 따로 설립하여 같은 교회 건물에서 주일 오전에 노숙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외에도 그들을 위한 성경 공부, 취업 알선, 야외 심방 및 병원 심방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면서도, 그들 스스로 봉사자로 참여하여 이 활동들을 지원해 왔다. 그리고 일본 교계와 해외 교계가 협력하는 초교파적 네트워크 ‘Kokoro Care’는 매주 월요일 저녁과 토요일 아침에 노숙인이 많이 생활하고 있는 공원의 보도에서 ‘통로채플’(通路チャペル)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홈리스들을 위한 예배이기보다는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찬양과 기도,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생활 빈곤자를 위해 준비된 빵과 각종 휴대 식품을 배급하는 순서를 가진다. 이 외에도 많은 교회에서 홈리스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고 있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방문하여 음식을 조달하고 상담하는 곳도 있다. 이와 같이 국가의 정책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교회가 그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홈리스 지원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노숙 생활이라는 가혹한 생활환경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들은 생존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공감하는 어떤 작은 교회에서는 교회 안의 단칸방을 내어주며 그들의 자립을 위해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마련하여 서로 사귀는 일에 힘쓴다. 함께 예배드리고 또 서로 안면을 트고 사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랜 인류사 속에서 ‘우리 대 그들’이라는 대립의식이 무의식 깊이 각인되어왔기에, 나와 다른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공감하고 그들과 사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는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 그리고 문화적 향유 등과 같은 측면에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점에서 점점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향유하고 또 어려운 자들과 사귀어 나갈 때, 충만한 기쁨과 생명력을 선사하는 고귀한 실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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