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만화 슬램덩크의 독자라면 들어보았을 대사일 것이다. 이 만화에서 북산고등학교 농구선수 강백호는 전국 농구대회에서 고교 최강팀인 산왕공업고등학교를 맞아 전력을 다해 경기를 펼치게 된다. 하지만 큰 점수 차로 계속 뒤지게 되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중, 뜻하지 않은 허리 부상으로 원치 않게 교체된다. 나는 영화판 슬램덩크를 보고 나자, 이 익숙한 질문이 다시금 뇌리에 살아났다. 어째서였을까? 강백호가 자신의 재투입을 종용하며 감독에게 던졌던 이 질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롭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일까? 그리고 그때를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속삭이고 다독였지만, 그동안 경험했던 삶과 신앙은 북산고등학교 상황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안정적’ 교사 생활을 잠시 멈추고 미래의 교육과 세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새롭게 뛰어든 도전이었지만, 데이터사이언스라는 첨단 분야는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나 같은 풋내기 도전자를 밀어붙였다.
어떻게든 좋은 선수가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문과 교육 및 신학만을 전공했던 본인에게 이 전공은 스노우(C. P. Snow)가 말한 ‘두 세계’의 반대편 끝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로 인해 결국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염려가 몰려오곤 했다. 불확실한 대학원생으로서의 현실과 휴직 이전의 교사 생활이 종종 머리 속에 상기되고 교차하면서 예전에 동료 교사들이 했던 “굳이 휴직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떠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본인이 택할 수 있는 쉬운 해결책은 언제나 있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모든 과정이 소명의 발로였든 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든 그저 그때뿐이라고 치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땀을 흘릴 필요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학업에 나설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힘겨운 상황은 모면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시합은 종료될 것이다.
“난 지금입니다.”
감독에게 영광의 시대를 물었던 강백호는 자기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물론, 그가 의미했던 ‘영광’은 경기 중 다친 허리나 지고 있던 경기 상황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에게는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지금’이 가장 영광된 순간이라 외칠 이유가 있었다. 바로 농구였다. 그리고 그 농구 속에서 얻고자 했던 최후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강백호뿐이었을까? 그날 최강 산왕 팀과 맞서 싸운 북산고등학교 농구팀의 선수 전원은 농구가 좋았고 이를 통해 승리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으리라.
신앙 속에서 학문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중에서도 대학원생들이라면, 비록 편차는 있겠지만 숨 가쁜 현실 속에서 연구 실적이나 재정 그리고 대인관계나 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가지 압박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해결책이 안 보이는 압박 속에서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이를 뚫고자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과 신앙,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강백호를 포함한 북산고등학교 농구팀은 당일 경기를 보는 다수의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이루어낸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그들은 환호했고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하지만 학문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현실이 그와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선을 다했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한 학문적인 업적을 내는 것에는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로는 외부 사정과 환경으로 인해서 중도 탈락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광의 시대는 과연 언제 오게 될까? 비록 학문 앞에서 우리의 삶이 빈곤하며 또한 고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우리의 모든 시도가 실패하는 것 같아도 그 모든 결과에 낙심치 않을 이유는 분명하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18-21)
그리스도인의 삶과 학문에서의 승패가 자신들의 노력에 전적으로 달린 것이라면 ‘영광의 시대’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영광은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적 죽음, 성령의 능력을 통한 부활을 통해 나타난다. 분명 그것은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모두 합하고도 남을 영광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소망하며 다짐해본다. “이 몸은 거들 뿐이고, 영광의 시대는 오직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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