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그리스도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모님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고, 부모님을 거쳐 자연스럽게 모태 신앙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각자의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셨고, 그러한 모습을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여러 모임을 통해 섬겼다. 스스로가 괜찮은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했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10살 때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써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만화가’라고 적어냈다. 당시 TV에 방영되던 애니메이션과 어머니 몰래 빌려 보던 만화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는 것을 넘어서 직접 제작도 해보고 싶었다. 그 꿈을 간직한 채 스무 살에 한동대학교에 입학해서 영상을 전공하게 되었다. 영상 제작 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그림을 여러 사람과 함께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매력적이고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꿈이 현실이 된 것 같아서 큰 행복을 느꼈다.
학업과 신앙을 동시에 잡고 싶었던 나는 2학년 때까지 패기 있게 선교 동아리, 영화 학회, 전공 연구실 등 다양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열정이 과했던 것일까? 학업과 많은 활동으로 매일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게 되었다. 신앙이 좋아 보이는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예배 시간에 주님과의 온전한 만남보다는 보이는 신앙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신앙이 무너졌을까?” 고민해 보니 내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는 했던 걸까 싶었다. 그냥 부모님을 따라서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던 건 아니었을까? 이러한 생각까지 도달하자, 그 이후는 교회에 가도 예배에 온전하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학년이 올라가며 많아진 학업량은 나와 주님의 교제 시간을 점점 더 줄어들게 하였다. 흔들리는 신앙은 일단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겠다는 명분으로 주님과도 멀어지게 하였다. 졸업 프로젝트를 앞두고서야 정신 차려보니, 내가 주님과 너무 멀어졌음을 깨달았다. 주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급함은 늘 있었지만 마음먹은 만큼 신속히 신앙이 회복되지는 못했다. 평생 이렇게 지속되면 어떡하지? 주님께서 방황하고 있는 나를 계속 이대로 내버려 두실까 무서웠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의 그리스도인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책망할 것만도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가 그 당시 나를 정죄하거나 억지로 교회에 끌고 가려고 했다면, 그 부담을 못 이겨 주님을 더욱 멀리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많은 사람을 통해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셨다. 주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시며 누군가에게 이끌려서가 아닌 내 의지로 아버지 곁에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학사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참 감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신앙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많은 성장도 있었다. 하나님은 전공과 신앙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고 함께 기도할 팀원들, 그리고 학문과 신앙을 더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지도 교수님도 허락해 주셨다. 1년간 졸업 논문을 작성하며 연구에 대해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좋은 논문 실적도 주셨다. 그렇게 졸업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자,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2022년 가을 학기에 카이스트를 지원했고, 지금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 2학기 차로 공부하고 있다.
나는 연구실로 출근하던 중 전화로 이 원고 섬김을 제안받았다. 당시 당황스럽고 걱정이 앞섰다. 스스로 이 글을 작성할 만큼 신앙이 좋다고 자신할 수 없었고, 아직 석사를 한 학기밖에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말을 확신 있게 쓰기에도 조심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위축이 많이 들었다. 대단한 선배와 동기들 사이에서 스스로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나만 모르는 내용이 너무 많고, 연구 주제를 정하지 못해 정체된 것 같아 초조했다. 한 번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위축되고 좌절되었다. 그러던 중 나도 모든 것을 나의 힘으로 하려는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나는 지금도 너무 약하고, 신앙적으로든 학업적으로든 거의 매일 무너지고 깨짐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계속 일어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오늘도 각자의 상황 가운데에서 이렇게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만약 누가 절망과 방황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이 지켜주심을 믿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우선 붙잡고 묵상하며 전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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