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
<읽다, 살다> / 정병오, 남기업 외 (지음) / 잉클링즈 / 2023
기독교는 예배당에 출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책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여 새로운 존재(being)로 인도하는 사역이었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명을 계승하여 2천 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단순하거나 유아론(solipsism)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고, 풍성하며 복잡다단하지만, 혁신적인 당대의 지배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길도 서슴지 않고 걸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낯설고 독특하고 생경한 길을 걸어간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다, 살다>에는 필자로 교사 두 분, 시민사회 운동가 두 분, 의사 한 분이 참여하였다. 이분들은 어찌 보면 모두 이러한 수고로운 삶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능력이 있다. 즉 많은 이들이 쉽게 가는 방식대로 그렇게 쉽고 안이한 길을 택하는 대신에 한결같이 스스로 힘든 일을 자처하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해서 즐겨 걸어간 분들이다. 마음이 몹시 아픈 아이들과 마주하신 권일한 선생님, 불평등한 사회 앞에서 희년이라는 정신을 사회 안에 가져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오신 남기업 소장님, 고질적인 교육 문제 앞에 행복해하지 않는 학생들을 마주한 송인수 선생님, 교장이나 교감의 직위를 통한 출세와 안주보다 하나님의 평교사로서의 부르심 앞에 마주하신 정병오 선생님, 자본주의 체제의 총아인 개원의로서의 정체성과 보수적 기독교의 정체성 앞에서 고민한 정한욱 선생님이 바로 그들이다.
이 필자들은 자신이 걸어가는 체제의 문제에 고민하고, 자신 앞에 마주친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때로는 예언자로, 때로는 교사로, 때로는 부모로, 품어주며, 안아주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살기 위해 찾아 나서기도 하면서, 예수 ‘따름이’로 살려고 발버둥치신 분들이다. 얼핏 보면 일종의 간증 같기도 하겠지만 결코 “그래서 복 받았어요”로 마무리하지 않아 좋았던 책이다. 성공서가 아닌, 성공의 끝이 아닌, 오늘도 현실 앞에서 기독인으로 고민하고 아파하며 또 새롭게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분들의 이야기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다. 이런 열병을 앓기 전 이른바 ‘가나안’ 성도의 출현이라는 전조 현상이 있었다. ‘가나안’ 성도의 출현은 도덕과 윤리의 부재와 부정부패, 신뢰도 하락과 기독교 지성의 결핍, 주체적 사고의 결핍, 대안 공동체로서의 포기 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들이었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국교회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다. 이들의 출현은 미래가 없을 것 같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엿보게 한다. 이들의 출현은 천편일률적인 한국교회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단비와 같다는 생각에 반갑기 그지없다. 이전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교회로의 안내는 아닐지라도 고착된 한국교회의 어떤 측면들에는 분명 새로운 물꼬를 터줄 흐름을 만들어 줄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이 ‘읽다 살다’이다. 필자가 보기에 여기에 나오는 분들은 모두 ‘읽기’와 ‘살다’의 달인들이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기의 영역이 아니라 사유와 앎의 영역이고 산다는 건 실천과 실존과 생존의 영역이다. 아는 만큼 산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사는 만큼 아는 것이다. 아는 만큼 산다는 것은 치열한 생존의 영역을 다소 가볍게 본 측면이 있다고 보기에, 결국 사는 것만큼 아는 것이고 삶은 앎의 총체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 읽었고, 읽은 만큼 살아갔고, 실은 산 만큼만 예수의 길을 안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그 어려운 길을 이분들은 걸어가고 있다.
저자 중 몇 분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정한욱 선생님은 밥 잘 사주시는 형님이신데, 이 형님에게서는 늘 고수의 아우라가 뿜어 나온다. 맛있는 식사는 좋은 칭찬만 하게 만든다! 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정병오 선생님의 글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다. “하나님은 나를 더 시골로, 더 변두리로 가서, 더 작은 사람을 만나고, 더 존재감 없이 살라고 하시는구나.” 한마디로 모두 멋진 예수 ‘따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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