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2권> 박동열·이상민 (지음) / 도서출판 고북이 / 2023
대학교에 들어간 첫 여름 방학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홀로 미국에 사는 친척 이집 저집을 방문하며 두 달여간 머문 적이 있다. 여느 한국 고등학생처럼 책상 앞에서 공부만 했던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 달 동안 등록한 어학원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수줍게 쭈뼛거리며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어색했다. 유명한 관광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 때문에 가족 여행까지 잡아 함께 샌프란시스코와 LA 여러 도시를 보여주시려 애쓰셨던 분들께 죄송하게도 오롯이 즐길 수 없었다. 무엇을 보아야 하나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하고 어색하기만 했던 내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은 나보다 열 살 많은 재미교포 언니 같은 오촌 아줌마와 함께 여기저기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였다. 율법이 아닌 진리 안에서의 자유의 삶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나의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해도 되는,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어른이 있다는 게 좋았다. 이야기하며 걷는 새로운 길은 외롭지 않았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란 책을 읽으며 그때 걸었던 길이 떠올랐다. 낯선 초행길이지만 그래도 걸어보아야지 선택하며 길을 나서려는 때,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어른이 다가와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주는 글이다. 가벼운 잡담이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도 소중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를 피하지 않고 직면할 용기와 선택의 책임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고민하는 살아 있는 청년들에게 먼저 다양한 문들을 열어주는 글이다. 일방통행으로 훈계하거나 가르침을 주는 지식 전달용 글이 아닌 답이 없을 것 같아 지레 피해버리게 되는 영역 모두 생각해볼 수 있도록 미리 건드려 주면서 이야기를 건네는 글이다. ‘생각 열기’, ‘생각하기’, ‘생각 나누기’의 구조에 따라 기술, 핵발전소, 인공지능, 환경위기, 소비주의, 소비행위, 금융위기, 도시, 교육, 불평등, 마르크스 사상, 광고, 선전, 대중매체, 오락 등 주제별로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용기를 내어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건네 보아도 괜찮겠구나, 외롭지 않겠구나”라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생각 나누기’의 질문을 따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들이 이 책의 저자들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신학자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저서를 계속 번역하고 그 사상을 연구하며 청년들에게 소개하려는 열정을 지닌 이상민 선생님,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하신 박동열 교수님, 저자 두 분은 엉뚱한 질문과 답변을 가지고 대화를 건네도 환대해주실 것 같은 분이다. 갑자기 변하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대화의 장으로 초청해줄 것 같은 분이다. 한참 던져놓은 주제를 가지고 담론을 나누고 있으면 몇 달 지나면 새로운 세상의 문들을 준비해서 이런 것도 생각해보아도 된다고 재미있는 생각 보따리를 새로 가져와 줄 분들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영역 아래 어느 하나 묻어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넉넉하고 풍성한 생각 주머니를 지니고 계시는 분들이다.
그래 용기를 내서 불쑥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열다섯 가지 주제 모두 중요하지만 아직 나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숙제로 남기고 기술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어보자.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나는 재활의학과 의사다. 조금 더 부연 설명하면 암 환자의 삶을 고민하는 재활의학과 의사다. 의학을 과학이라는 학문 아래 두면서 각종 의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ICT, 가상 현실, 로봇 기술이 환자의 재활, 다시 살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술로 부각하는 장 한가운데 살고 있다. Chat GPT가 의사 면허 시험도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언젠가는 의사 역할을 대체할 인공지능 시대가 왔다는 기사를 읽으며, 살아 있는 인간 존재 자체의 유일무이한 독창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과학기술 연구에서의 인문사회적 참여>라는 연구 보고서를 며칠 전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놓으며 과학기술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영향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과학기술 연구에서의 성과 달성 모델의 모호성과 불완전성을 개선하며, 과학기술 연구에서 학제 간 협력의 필요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문사회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역설해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과학기술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의 항목까지 포함시키려는 시도에 그친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것인가.
마침 오늘의 매일 성경에서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참패 소식을 듣고 어떻게 대응할지 모의하는 바리새인들의 질문 공세가 나온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 순위를 매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 질문이다. 가장 중요하고 우선인 것들을 효율적으로 찾아주는 각종 기술의 행태가 마치 바리새인들의 질문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친다.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기가 막히다. 율법의 핵심을 명쾌히 요약한 이후 바리새인들에게 던진 질문,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마 22:45)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을 확장해 주신다. 바리새인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책의 1장 20페이지를 펼치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기술의 가장 큰 도전은 기술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인간은 생각과 선택에서 자유로울 때만이 존엄성과 고유성을 지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대속 제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끊임없이 무엇이 중요한지 좋은 것인지 줄을 세우는 기술에 매몰되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자유의 차원을 생각해보자고 한다. 저자가 기술과 관련하여 거부하는 것은 기술에 과도하게 부여된 신성함이지 기술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구체적인 기술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유연한 기술로 유도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질문이 너무 일차원적이라 무시하지 않고 하나하나 답하며 가르치셨던 그분의 세상을 향한 사랑을 떠올려 본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