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망설임 끝에 ChatGPT에 로그인했습니다. 이번 호 편집을 위해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우리 주제에 대해 ChatGPT가 어떻게 답하는지도 궁금했고요. 하이테크에 대해서는 오랜 친구인 퀀틴 슐츠(Quentin Schultze)가 제안한 “Yes, But”의 원칙을 따라왔습니다. 기술도 하나님의 선물이니 필요하면 사용해야 하기에 “Yes”입니다. “그러나”(but) 누가, 무엇을 위해, 왜, 언제,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지 꼼꼼히 따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이런 질문을 격려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적 반성은 더욱 기대할 수 없지요. 그래서 특집 글에 기대가 컸습니다.
<시선>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시도 쓰고 그림도 척척 그려 내지만 자의식이나 의지와 감정이 없기에 그것을 느끼거나 즐기지 못합니다. 결국 바른 사용은 책임감과 도덕의식이 있는 인간의 몫입니다. 특히 이웃의 안녕과 복지를 염두에 둔 활용 자세를 확산시키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역할과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특집> 첫 글에서 김명주 교수님은 인공지능이 인류 집단지성의 여건을 바벨탑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진단합니다. 거기에 담긴 세상의 욕망을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대항할 선지자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권오욱 박사님은 ChatGPT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소개합니다. 생성언어모델의 능력은 크게 발달했지만, 자율적 사고를 하는 조짐은 없다고 합니다. 박해정 교수님은 인공지능을 과도하게 의인화하는 경향과 피동적이 되기 쉬운 위험을 지적합니다. 손화철 교수님은 인공지능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장의 원리에 따른 개발, 엄청난 에너지 소모, 저작권, 기술적 불평등 권력 구조의 문제 등도 제기합니다. 기술의 작동 방식에 파악하는 것이 바른 활용을 향한 분별력의 조건이라 했고요.
이상민 박사님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합니다. 인간을 돕는 도구가 되게 관리와 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를 요청합니다. 자크 엘륄의 통찰을 따라 기독교 신앙이 기술의 신성함을 깨뜨리고 그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임을 강조합니다. 김수환 교수님은 전문가의 영역이던 인공지능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든 ChatGPT는 양날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 특징을 이해하고 장단점을 바로 파악해 어디에 얼마만큼 사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고요.
최우성 박사님도 ChatGPT를 신앙생활에 바르게 활용하는 방안은 영적 교제와 인격적 만남 속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길뿐이라고 합니다. 고세일 교수님은 인간 판사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인공지능의 판결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 중국의 예를 들어 기술적 한계를 밝혀줍니다. 이경건 박사님은 ‘주님 AI’의 경우처럼 인공지능을 목회자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우려하며, 정통 신앙고백을 상황에 맞게 재형성하는 역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사람 사이>에서 고의찬 형제가 만난 이호수 박사님은 대표적인 AI 전문가입니다. 인공지능을 인간과 업무 분담하여 잘 활용할 것을 권하지만 AGI(범용인공지능)의 가능성은 단호히 부정하시네요. 과대광고라고 하십니다. AI의 실체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도우미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섬김의 자리>의 안선자 사무국 팀장님은 선교단체에서의 오랜 사역과 담임목사 사모로서 동역회를 섬기시는 보람과 바램을 들려줍니다.
<청년 시론>에서 임찬송 형제는 대학 입학 후 자신의 비전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신앙생활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나눕니다. 이동욱 형제도 연구실과 교회에서의 신앙과 학문의 씨름에서 얻은 지혜를 공유합니다. 장석현 형제도 항공기 조종사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소개합니다. 오원석 형제도 대학 졸업 후 진로 모색에서 겪었던 신앙적 씨름과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며 갖게 된 신앙의 각오를 나눕니다.
<영화를 보다>는 강진구 교수님이 SF영화 <정이>(2023)를 소개합니다. 모녀 관계로 설정된 로봇과 개발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정체성 탐구와 자본의 위력이 만들어낸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여줍니다. <미술을 보다>의 서성록 교수님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림을 예술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소개합니다. 예술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인간의 감정과 경험의 깊이와 사유가 결여된 것은 모작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하며, 인간의 창의성을 선하게 활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밝혔습니다.
<책을 보다>에서 김예찬 형제는 존 레녹스의 <2084>에 나오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소개하고, 김태진 형제는 에그버트 스휴르만의 <기술의 불안한 미래>에 나오는 지금은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에서 생명을 돌보는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교회 路>는 아름빛교회의 기독교세계관학교를 소개합니다. 김영윤 담임목사님의 기획 설명과 김원철 집사님의 수강 소감이 함께 합니다. 아름빛교회는 이제 막 설립 1년을 넘어섰지만, 성경적 신앙으로 교회를 이끌고자 기독교세계관학교를 열었고 계속 정기적으로 이를 운영할 계획이라 합니다.
<온전한 지성>에서는 최용준 교수님께서 세 번째로 도여베르트의 기독교 학문 이론을 소개합니다. 일상 경험들과 구별된 학문의 이론적 사고가 신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학문이 삶의 특정 부분을 절대화하는 환원주의에 빠지는 이유를 밝혀주는 양상구조 이론을 핵심으로 꼽습니다. 양성만 교수님은 한국기독교 철학회 25주년 기념 학회에 대한 보고를 해주셨습니다. ‘기독교 세계관과 철학’을 연구해온 손봉호, 김영한, 강영안, 신국원, 최태연 교수님의 발제를 소개합니다.
이번 호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인공지능에 관해 높은 식견을 가진 분들의 글들을 실을 수 있어 뿌듯합니다. 이 주제로 특집을 낸 교계 언론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동역회 회원과 교회만 아니라 교계 전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애써 주신 편집위원들과 필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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