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은 인류가 단일언어를 사용하여 소통 기반의 집단지성을 발휘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돌을 대신하여 벽돌을 사용하고 진흙을 대신하여 역청을 사용할 줄 알게 된 인간은,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았으며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도록 건축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이 상황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6-7).
이렇게 똑똑한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취하신 방법은 언어를 흩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집단지성 도출 과정에 결정적 장애물을 두신 셈이다. 만일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노아의 홍수 이후 새로운 심판이 인류에게 내려졌을 법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놀라운 계획이 이 땅에서 성취되기 전이라 이러한 심판은 유예되었다. 드디어 이 놀라운 구원 계획은 이루어졌다. 덕분에 우리 세대는 역사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컴퓨터로 상징되는 3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류를 바벨탑 사건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다양한 언어로 인한 인류 소통의 장애를 말끔하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는 바벨탑 사건 때보다 더 뛰어나게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이다.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ChatGPT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열풍은 앞으로 일어날 인류의 기술 대혁명에 비하면 약과이다. 앞으로 인류가 이루어낼 일들은 하나님도 못 말릴 정도이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근 6개월 사이 전 세계에 몰아친 ChatGPT의 열풍으로 인해 인류는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증폭하며 신기술을 통한 유토피아의 구현이 충분히 가능함을 믿고 있다. 반면에 창세기 11장의 시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경우, 지금과 같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종말지종(終末之終)이며 종말 시대로의 본격적인 진입 신호처럼 다가온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은 기독교가 아닌 지성과 기술의 현장에서도 등장한다.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국을 통해서 우리 국민 모두 인공지능에 대한 존재감을 확실하게 느꼈을 때, 영국 BBC 방송 인터뷰를 통해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런 경고를 했다. “자칫 인공지능은 인류의 마지막 기술이 될 수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 회장,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s III)회장도 똑같은 예견을 했다. 특히 일론 머스크 회장은 이러한 인공지능의 배신에 대비하여 앞서서 준비하는 단체를 설립하도록 기금을 투자했는데 바로 문제의 ChatGPT를 만든 ‘오픈AI’라는 점이 다소 아이러니하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인류가 놓여있는 기술적 상황들은 이미 과거로 되돌릴 수 없으므로 인류 전체가 적극적 방어를 취해야만 한다.
ChatGPT 사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서던 올해 1월 26일. 구글 및 모기업 알파벳 경영진은 ‘파이낸셜타임즈’ 기자와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 “구글은 ChatGPT보다 더 성능이 우수한 인공지능을 이미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파생될 엄청난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들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이를 개방할 수 없다”. 정말 멋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검색엔진 시장을 92.9%나 점유하던 구글에게 고작 3%를 점유하던 마이크로소프트가 ChatGPT를 등에 업고 공세를 펼치자, 어쩔 수 없이 열흘 뒤에 구글은 ChatGPT에 대응하는 바드(Bard)를 공개하고 말았다. 검색시장 점유율 1%가 연간 광고액 2조 5,000억원(20억 달러)에 상응한다는 통계치는 구글과 알파벳 경영진에게는 버틸 수 없는 압박이었다. 문제는 ChatGPT나 바드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으킬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이 짧은 기간 안에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ChatGPT는 매우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아주 무서운 위험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ChatGPT는 이용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따라서 미성년자들에게 ChatGPT는 더 큰 위험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신기술이며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사회적으로 보면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인간의 숨겨진 욕구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와 사회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는 바벨탑 사건 이전으로의 복귀로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의 소유와 성취에 대한 욕심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감과 소망은 급속도로 작아진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는 예수님의 반문이 갈수록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듯하다. 인공지능이 이끌어갈 종말 시대의 어두움과 잠재적 위험을 깨달아 크게 외침과 동시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선지자적 사명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귀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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