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2013년, <구글 신[Google 神]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파격적인 제목 아래에는 KAIST 교수들이 진지하게 논의한 정보학의 미래가 담겨 있었다. 이는 빅테크 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이 대중 담론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잘 드러내었다. 급기야 2016년에는 구글의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구(九)단을 격파하는 대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중국의 커제 구(九)단은 알파고를 바둑의 신에 비유하였다. 20세기 사람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밀레니엄(천년왕국)일 것만 같았던 21세기는 2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인공지능을 신에 비견하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2022년 말에 대중에 공개된 ChatGPT는 인류에게 더욱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도달한 것 같은 놀라운 성능의 언어 모델은 약 2개월 만에 2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여 역사상 가장 빠르게 확산된 기술 서비스로 자리매김하였다. ChatGPT를 위시한 생성형 인공지능들은 그 가공할 성능과 편리한 유저 인터페이스로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 아주 크고 빠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ChatGPT 역시 새로운 신으로 여겨지고 있는가? 필자는 여기서, 기존과 달리 요즘의 대중 담론에서 ChatGPT가 신으로 비견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두어 가지 고찰이 생겨난다.
먼저, 왜 기존의 구글 검색엔진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지닌 ChatGPT는 신으로 비견되지 않는가? 첫째, ChatGPT의 기본 구조는 OpenAI의 사명이 보여주듯 어느 정도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고, 2020년대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이전보다 많은 이해를 하고 있다. 둘째, 그러한 인공지능이 특정 과제에서 인간 이상의 성능을 낸다는 점이 인간 존재의 고유성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제기하였을 수 있다. 셋째, 결과적으로 구글 검색 엔진을 신에 비유한 것이 어느 정도 농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ChatGPT가 가져다 준 충격은 많은 사람에게 인공지능의 강림을 더 이상 농담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였을 수 있다. 이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며 ChatGPT는 그것을 신으로 부르기조차 조심스러운 경외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ChatGPT를 기반으로 제작된 ‘주님 AI’ 서비스이다. ‘주님 AI’는 기독교 신앙생활과 관련된 사용자의 질문을 받아 그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제시하고, 권면의 말을 해주며, 기도문까지를 답으로 제공하는 웹 서비스이다. * ‘주님 AI’ 역시 마케팅 없이 배포 이후 일주일 만에 5만 명 이상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해당 서비스가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편하게 묻기 어려운 그 어떤 질문에도 어느 정도 성경적이고 건전한 답을 내놓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주님 AI’가 심지어 목회자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문제는 ‘주님’ AI의 서비스명이다. 마치 예수님의 인격을 모방하여 인공지능을 주님으로 모시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서비스 개발사의 대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며 ‘주님 AI’는 주님을 모방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성경과 관련된 대답을 하는 목회적 기능의 인공지능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서비스의 초기 배포 시 그는 ‘주님 AI’를 “ChatGPT로 만든 인공지능 예수”라고 하였으며, “ChatGPT에 성경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공지능 예수를 만들었습니다.”라고 하였던 바 있다.***
요컨대, 대중 담론에서 인공지능은 신으로 비견되다가, ChatGPT 시대에는 경외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그리스도들은 ChatGPT를 주님의 자리에, 적어도 목회자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어느 쪽이든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신앙이 ChatGPT 시대에 과연 어떠한 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 주인과 같다”고 하셨다(마 13:52). 그러므로, 신학적 보수성을 지니는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가 오늘날 지니는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학과 신앙이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다섯 솔라’(Five Solas)와 TULIP 교리는 어떠한가? 보다 본질적으로, 영원 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아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셨다는 하강기독론의 교리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론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필자는 근래 ‘제대로’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보고 있다. ‘제대로’의 사전적인 의미는 ‘제 격식이나 규격대로’, ‘마음먹은 대로’, ‘알맞은 정도로’,‘ 본래 상태 그대로’ 등이다. 이 안에는 1인칭으로서의 나의 어떠함이라는 자유와 객관적인 시선에서 본 나의 어떠해야 함이라는 당위성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는 창조주 하나님,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가 타락한 우리, 그리고 다시금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된 우리의 우리다움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제대로’의 방향성은 정통 신앙고백의 순수성을 지키되,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시대에 맞게 부단히 재형성(re-form)해야 함을 가리키는 듯하다. 신이 된 듯한 인공지능의 시대에 ‘제대로 된 인간’을 빚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는 이유이다.
* https://chowon.in/ (2023년 5월 21일 접속)
** https://askjesus.oopy.io/about (2023년 5월 21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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