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목회자이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아 안전한 신앙의 울타리에서만 자라왔던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처음으로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세상의 시험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나보다 멋지고 잘난 사람들을 보면서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 패배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세상 학문이라는 쓰나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부서지고 내 마음은 진리가 아닌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바로 ‘목표의 부재’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한다는 학창 시절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룬 후 나는 그다음 목표를 찾지 못했다.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꿈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 반항심부터 들었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말들이 교회에서 들리는 것은 더 마음에 안 들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향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실리 없다고, 그런 건 바울이나 다윗 같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거로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학부 시절 주전공이었던 서양사와는 너무나도 다른 데이터사이언스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한 가지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이 공부를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고 싶다는 소원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잠깐 떠오르다 마는 내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희미했던 소원이 이내 내 마음속에서 점차 선명해지며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환경적으로도 길을 활짝 열어주셨다. 연구실 인턴을 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셨고, 스펙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에도 진학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다. 누가 보면 말렸을 것 같은데, 나는 호기롭게 대학원 자기소개서에 지원 동기를 ‘데이터사이언스를 기독교와 접목시키기 위함’이라고 적었다. 지원율이 낮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지원 동기로 합격한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길이 없는 곳에도 길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보며 마음의 작은 소원은 점차 부르심으로, 사명으로 확신이 되어 다가왔다.
나는 비전을 받고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는 비전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비전이 없었던 이십 대 초반 시절과 비교해보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 때 나는 어떤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다. 진로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대학원 공부가 힘들 때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때때로 내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할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경종을 울리는 파수꾼처럼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게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이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신다. 그분은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사이언스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를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쓸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가지고 기도할 때, AI와 데이터 분석, ‘컨텐츠 플랫폼’ 등을 활용하여 교회와 신앙생활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하나님은 이 일을 함께할 다른 사람들도 이미 불러놓으셨음을 알려주셨다. 올해 2월에 ‘그리스도인, 인공지능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기독대학원생 북 콘서트'에서 참 귀한 형제, 자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같은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기독교인을 위한 ChatGPT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 기술을 사용해 교회에 유익을 주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부르신 후에 그냥 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한 걸음 한 걸음을 계속 인도해가시며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아직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묵시(vision)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는 잠언 29장 18절 말씀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가 방자히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겠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시다. 내 욕심대로 꿈을 꾸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원과 비전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 계획은 언젠가 실패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나의 부르심’을 하나님께 묻고 깨달아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는 주의 자녀들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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