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현재 나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이론물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다. 대학 시절부터 물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입자물리(elementary particle physics)와 우주론(cosmology) 연구를 통해 학위를 받았다. 입자물리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최소 단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연구하는 분야로 고대 그리스에서 ‘원자’(atom)라고 불렸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물리적 실체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주론은 현재 망원경으로 관측되는 우주가 어떤 과거 역사를 거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언뜻 보기에는 입자물리와 큰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현대 우주론은 입자물리를 바탕으로 하는 소위 ‘초기 우주’(early universe)에 대한 이해로부터 발전되어 왔기에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자랐던 나는 사실 대학원 시절에 이르러 전공 분야를 심도 있게 파고들기 전까지 물리학과 신앙 사이에 어떤 긴장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자연 세계의 운동이 이렇게 단순한 수학 법칙들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재미가 있었고, 그러한 법칙들을 부여한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신앙의 사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학부 시절까지 배웠던 물리학은 주로 우리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자연세계에 적용되는 법칙들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대학원 공부에 이르자 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입자물리는 우리 몸을 포함해서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입자를 찾고 그 입자의 운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현대 우주론은 이 입자물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초기 우주에 대한 수학적 이론을 만들었고, 이 이론은 현재 망원경으로 관측되고 있는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광선들을 매우 정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초기에 매우 고밀도로 응축되어 있던 에너지로 인해 공간이 확장되고 근본 입자들이 생성된 후 그 입자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별과 은하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생겨났고 이러한 과정은 약 140억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현대 이론물리학은 우주의 기원과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다루고 있기에, 신앙의 영역과 많은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식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느껴졌던 가장 큰 긴장감은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광범위해 보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생명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초자연적인 창조주의 개입이 없이도, 거의 모든 것을 정합적이고 개연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체의 근원은 물질이라는 소위 유물론과 자연주의 세계관은 바로 이러한 현대물리학의 발견에 의해 지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리학적 발견들과 지식들을 한계가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단순히 무시해버리는 것은, 광범위하고 정밀한 관측 데이터와 그 데이터들을 수치적으로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는 물리 이론의 설명력을 볼 때 지성적으로 올바른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상황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지성적 판단을 과학은 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의문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정말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왜 창조주의 개입을 가정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느냐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대학원 시절 RACS(카이스트 창조론 연구회)라는 공동체를 만나 이 질문을 비롯하여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함께 심도 있게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는 저마다 다른 의견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과학연구를 통해서 창조주의 존재와 사역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사람도 있었고, 과학 이론과 지식의 한계라는 측면에 집중하여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으며, 과학 이론을 전반적으로 수용하면서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고 신앙을 이해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중점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 기독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들을 다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된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과학 이론과 지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주어진 증거들을 통해 사람이 내릴 수 있는 당대의 최선의 지성적 판단이라고 본다. 그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앙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인다면 왜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과학 활동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현재 우리 삶에 관여하심을 믿지만, 누가 이것을 모든 이가 동의할 수 있게 객관적으로 증명해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왜 하나님은 더 감각적 방식으로 자신을 우리와 모든 사람에게 계시하시지 않는가? 이 질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기독교 신학은 다양한 전통을 따라 여기에 답해왔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은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로서 그리고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연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식 그대로 탐구하면서 마주치게 된 세상은 이처럼 그리 간단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생각할 때 단순히 예상하는 것처럼 순탄하고 좋아 보이는 일만 있지 않고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바로 이러한 고난에 관해 말하고 있고 하나님이 그것을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 하나님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학문의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진리를 보게 하셨고, 이것은 개인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느 일터에서든지 주께 하듯이 진심으로 행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더 그분을 알게 하시고 깊고 풍성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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