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현대 교회는 ‘예배전쟁’(worship war)이라는 길고 긴 전쟁을 치러냈다. 종교개혁의 전통 아래, 하나님께서 받으실 합당한 예배에 관한 연구는 “교회 안 예술은 세상과 구별된다”라는 명제를 낳았으며,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구별하여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구별된 기독교 예술’의 경계선에 대해서는 일치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예술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불가피한 긴장은 언제나 교회 건물의 벽을 넘나드는 순간 시작된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교회의 모든 봉사와 사역에서 제외되어야 했던 나는 세상 속에서 재능을 쓰임 받는 꿈을 그리며 성장했다. 어린 나이부터 성경을 사랑하고 문학과 미술을 사랑했던 피아노 전공생인 나에게,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인생의 놀이터였다. 고난과 노력을 통해 작품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완성하는 과정, 겸손과 순종을 이루는 자기 비움의 과정, 슬픔과 한숨이 기도 시와 노래가 되는 과정,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타락한 죄성 때문에 힘들어했고 구원의 기쁨 때문에 즐거웠다. 성경을 통한 삶의 진리를 예술 속에서 풍족히 누렸다.
미국에서 교회음악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문학 및 음악학 박사이신 독일 출신의 여교수님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기독교예술학’ 박사과정에 추천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 어렵고 복잡한 학문의 세계로 나를 강권하여 초대했다.
나는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몇 가지 당혹스러운 사실과 마주했다. 플라톤을 포함하여 세기의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어렵다고 고백한 학문의 영역이 이른바 ‘아름다움’을 규명하고 ‘예술’을 논하는 그 미학의 영역이었다. 칸트는 미(美)의 영역이 진리와 선악을 다루는 영역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해야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했고, 미학은 그렇게 감성과 인식의 영역으로서, 진리(眞)와 선(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으로 미학을 논한다는 것은 신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죽을 만큼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이 갈망하는 아름다움의 종류는 다르고, 인식의 방법이 주관적이며, 예술의 모든 장르가 각각의 미학적 노선을 걸으며, 고대로부터 동시대까지 예술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예술학’이 지성의 학문으로 인정을 받기에는 일관성과 보편성이 부족하다는 평판과 한계에 수없이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영역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재탈환해야 하는 잃어버린 영토를 대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내 유일한 개혁주의 문화신학자 신국원 교수님이 계신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의 일원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예술학, 교양철학, 예배음악, 기독교예술사 등의 과목들을 강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일차적 소명은 예술이라는 학문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고유의 주권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영역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세상을 구성하는 특별한 영역임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성과 인식의 영역의 당위성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성의 영역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성경 해석학에 능한 학자가 되어야 하며, 논리학과 심리학의 전반적 지식도 갖춰야 함을 느낀다. 기독교 인식론과 영성 형성에 대한 안전한 신학적 소양을 갖추고 대중문화와 각 예술 영역의 역사와 양상도 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길은, 다양한 학문의 이해와 함께 예술의 자리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위치한 올바른 양지에 올려놓는 일에 작은 보탬을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를 통해 기독교 지성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더 풍성하게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을 돕고 싶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과 계시에서 수학적 계산이나 과학적 실험, 경영적 전략이나 교육 성격의 논리적 설명으로 하지 않으셨다. 그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실제에 있을 법한 허구의 스토리로 그 진실을 ‘경험케 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예술이 하는 일이다. 다양한 영역의 기독교 지성인들이 예술 영역과 조화로운 공존을 하며 그들의 신앙과 지성이 영성으로 더 따뜻해지는 기독교 문화를 꿈꾼다.
동시에 기독교 예술인들이 교회 건물의 벽을 넘어 인간을 더 사랑하는 따뜻한 예술을 흘려보내는 일에 동참하도록 함께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 ‘아트미션’과 ‘기독교 미술인 협회’라는 기독교 미술인 단체에 초청을 받았는데, 연구를 넘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그들이 차곡차곡 쌓은 작품활동과 기독교 미술에 관한 연구 자료들을 대하고는 가슴이 먹먹해졌고,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세상 문화를 아름답게 변혁할 수 있다는 소망으로 충만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본능적으로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이해한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숫자와 계산이 중요한 고착된 신념과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비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아는 자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선택이다. 아름다움의 참 본질을 이해하는 예술적 소양은 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를 길러줄 것이라 믿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길을 아름답게 할 그런 학문을 꿈꾸며,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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