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몇 년 전,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라는 책을 구하기 위해 책을 낸 출판사에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제목을 영 잘못 지었어요. ‘과학’이라는 단어도 따분하고, ‘종교’라는 단어도 따분한데 이 둘이 다 들어있으니 누가 좋아하겠어요?”라고 투덜거리며 창고로 내려가던 출판사 직원의 자조하는 탄식에 자못 놀랐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종종 그 직원의 탄식을 떠올리면서 정말 사람들에게 ‘과학’과 ‘종교’가 따분한 주제인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이와 관련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곤 했다. 여기서 ‘종교’란 물론 기독교 신앙을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이 ‘과학’ 하면 지레 겁을 먹고 부담스러워하지만, 어린이들을 보면 대체로 과학 과목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만지면서 실험하는 것을 대부분 즐거워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종교 생활’은 싫어할지언정 ‘진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와 같은 것에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드물다. 누구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위탁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딘가 잘못된 교육을 받아서 과학에 관한, 또 기독교 신앙에 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바른 시각을 가지고 있나? 과학을 공부하면서 지식은 상당히 쌓였지만, 과학과 신앙을 아우르는 큰 그림은 가지고 있지 않거나, 또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필자는 기독교 신앙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있고, 이것은 전적으로 은혜의 영역임을 시인한다. 문제는 내가 과학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 과학으로 해석된 세계만을 공적인 것으로, 교회 안에서 고백하는 세계는 사적인 것으로 분리시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을까? ‘분리되지 않은’(undivided) 과학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런 고민 속에서 자연대학에서 연구하던 필자는 점점 교육 분야로 관심 영역을 이동해왔고, 지금은 사범대학에서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C. P. 스노우(Charles Percy Snow)는 “숫자 2는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보기에 교육 현장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는 듯 보인다. 그중 하나는 과학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물론 과학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 과학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기준이고, 자연과학의 방법을 통해 규명되지 않는 것은 아예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생각으로 과장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과학주의’(scientism)라고도 부르는데, 교육 현장에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과학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실상은 과학주의 사상을 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반대로, 과학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관점도 있다. 이 생각에 따르면, 과학적 지식은 결코 진리가 아니며 단지 사회적 합의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내 신념과 맞지 않으면 무시해도 좋다. 이러한 생각이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 존중’이라는 건전한 생각과 손을 잡으며 뜻밖의 위험한 교육과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식은 단지 학생의 머릿속에서 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든지, 학생마다 흥미를 느끼는 영역이 다양하기에 과학교육에서도 진리니 규범이니 하는 말들은 최대한 없애고 오로지 학생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육 전반에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진리 추구’와 같은 이상은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위의 두 관점 사이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숫자 “2”가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두 극단을 고려함으로써, 그 사이의 스펙트럼 속 나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는 과학교육의 회복
필자는 과학교육이 앞서 말한 두 가지 양극단 중 한쪽으로 치우침을 우려하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양극단의 관점은 과학 또는 인간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과학교육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일정 부분은 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공동체의 합의로 임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시는 만큼 우리는 실재의 부분적인 모습을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이 과학적 지식의 중요한 한 측면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 추구’라는 가치는 구닥다리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같은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지식은 여전히 잠정적이며 언제든 새로운 관찰로 폐기되고 다른 이론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도 결국 인간이 하는 활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즉, 우리는 과학교육을 통해 과학적 사실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틀릴 수 있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두루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과학교육에서 강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는 과학교육은 과학도, 인간도, 자연도 아닌 하나님이 중심으로 드러나는 과학교육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의 대단한 측면과 인간의 한계를 균형 있게 조명해줄 필요가 있다. 과학교육에서 이러한 양면성이 고려될 때, 학생들은 ‘과학-인간-자연’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들 너머에 더 큰 실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과학교육, ‘분리되지 않은’ 과학교육의 모습이다. 이미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선배 학자들로부터 배우면서 필자 역시 ‘작은 영역’(물리학)에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과학교육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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