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신앙과 삶의 이원화 극복을 핵심 가치로 삼으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 삶에서 신앙과 학문 연구를 병행하며 이를 조화시키려 애쓰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의 고군분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런 노력과 분투는 특별히 한국교회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원로 손봉호 선생님과 그리스도인 소장 학자들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도 선명해지리라 기대한다. 영성과 지성, 신앙과 학문의 이원화 극복을 위하여 이렇게 원로와 여러 소장 학자가 한자리에서 소통한 이야기는 묵묵히 자기 소명을 감당하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 일시 : 2023년 7월 20일(목) 저녁 8시
- 장소 : Zoom 회의실
- 대담자 : 손봉호 박사(서울대 명예교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명예 이사장)
- 참가자 : 김샛별 박사(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교육심리학), 박정우 박사(서울대 지구환경학부 교수, 지질학),
윤헌준 박사(숭실대 기계공학부 교수, 응용역학/AI 기반설계), 조지혜 박사(서울대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교육학)
- 정리 & 이미지 : 석종준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손봉호 : 박사님들 안녕하세요. 현재 자신의 소속과 연구 분야를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김샛별 : 저는 한국교육개발원 디지털 교육 연구실에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이 학습할 때 온라인 콘텐츠를 많이 활용하는데요. 그 콘텐츠 개발 전담으로 최근 입사하였고, 연구 주제는 청소년의 인성 교육과 사회 기여의식, 봉사활동 같은, 다소 도덕 교육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박정우 : 저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화성 암석학과 해양 지질학을 연구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구 내부에서 마그마가 발생하고 지표면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과정들이 어떻게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유용한 여러 광물 자원을 만드는지 연구합니다.
윤헌준 : 저는 2020년 9월부터 숭실대 기계공학부에 임용됐고요. 세부 전공은 응용역학이며, 박사 논문은 버려지는 진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으로 여러 스마트 구조들을 설계하는 연구를 합니다.
조지혜 : 저는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요. 현재 서울대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습니다. 2001학번으로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에서는 교육 인류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는 교육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주로 교육과 문화와 사회의 관계를 질적 방법론으로 연구합니다.
손봉호 : 모두 중요하고 흥미로운 분야를 전공하시는데요. 기대를 하겠습니다. 먼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철학적 배경을 잠깐 말씀드리면요. 서양 사람들은 과거에 인간은 이성이 있기에 모두 세계를 같은 관점으로 본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서 “과연 이성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라는 의문과 회의가 생겼어요. 20세기 초, 문화인류학에서는 그 회의가 더 확산이 되어서 다원주의, 상대주의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기독교는 이성 중심의 서양 사상으로부터 큰 도전을 받았어요. 이성은 계시를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주류 철학에게는 미신과 비슷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성에 대한 회의와 상대주의가 생기니까 “우리가 다 세상을 다르게 보지 않느냐? 이 배경에는 종교와 문화의 다원성이 작용한다.”면서 ‘세계관’ 문제가 중요하게 됐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기독교 세계관이 여러 세계관 중 가장 올바르다”라고 본 것이지요. 모든 피조물과 문화,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세계관은 “세계를 이렇게 본다.”라는 식으로 ‘기술적’(descriptive)이라면,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으로 세상을 이렇게 봐야 한다.”라는 식으로 ‘규범적’(prescriptive)이지요. 19세기까지는 “신앙은 신앙, 학문은 학문이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신앙과 학문’도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원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운동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학문하면서 이 문제를 한번 고민해보셨는지,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고민했는지 한번 말씀해 주세요.
김샛별 : 저는 석사과정 때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학술대회도 참여하며 고민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떤 명확한 답을 찾은 것 같진 않습니다. 교육학은 인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이 있어서, 어떤 점에선 통상적 기독교와는 다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인성교육이나 시민교육 측면에서 기독교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주제들, 이를테면 봉사활동이나 친사회적 행동의 유익성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 가치관과 합일되는 이야기들을 더 잘 할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박정우 : 전공에서 저의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만드셨고 모든 피조물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에는 인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이 많을 텐데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과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찾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지구와 우주를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광대한 시스템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것을 창조하시고 한 치 오차 없이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함과 대비되는 인간의 유약함과 한계를 드러내는 것도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헌준 : 제 학문영역에서 신앙 정체성은 사실 진로 고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학부 3학년 때 우연히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접하고 공학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배워서 남 주자”를 인생 비전으로 품고 “대학원에 가자!”라고 결심했고, 연구하면서 기계공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심오한 매력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공을 등산에 비유하는데요. 우리가 산에 오를 때 경관 자체를 감상하지 매번 신학적 해석을 하지는 않지요. 마찬가지로 저는 연구할 때 창조 세계에 내재 된 물리 법칙을 깨닫고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거든요. 기계공학 그 자체를 그냥 감상하는 거죠. 이것이 저의 그리스도인 학자로서의 정체성이지 않나 싶습니다.
조지혜 : 저도 계속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석사과정 때는 질적 연구와 현대 철학을 공부했는데, 그때는 철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는 일이 버거워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육아를 하면서 7년 정도 공부에서 떠나 있는 동안, 교회를 섬기며 만난 집사님들과 신앙 안에서 나눈 대화와 치유의 체험이 있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분들과의 만남을 논문으로 쓸 마음을 주셔서 연구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을 위해 현상학을 공부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체험한 치유적 대화를 잘 설명해 주는 좋은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하나님 이야기가 담긴 논문이 현대 철학과 만나서 석사 논문으로 완성되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힘입어서 할 때 이전에는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당시 손봉호 교수님의 <고통받는 인간>, 강영안 교수님의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이라는 책이 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손봉호 : 정체성이 반드시 정해져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삶은 계속 발전하는 것이기에 더 연구하고 경험하면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또 얼마든지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앙과 학문’ 사이의 긴장 또는 갈등 경험은 없었는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박정우 : 제가 그리스도인 지질학자로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지구 나이는 과연 몇 년인가요?”입니다. 성경에 근거하면 약 6천 년인데 학계에서 얘기하는 45억 년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죠. 저는 먼저 6천 년이 맞는가 한 번 살펴봤습니다. 학자마다 성경 원문이 무엇이냐,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을 알았고요. 해석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자연과학의 언어로 몇 년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45억 년이 맞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45억 년이라고 써놓지 않으셨던 이유에 대해서는 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서로 상충하는 것 같은 과학 언어와 성경 언어의 차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의 유한성을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과 다른 차원에 계시고 자연의 법칙을 충분히 거스르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성경과 과학에서의 지구 나이의 차이가 공존하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요. 둘째는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의 유한성을 지적합니다. 과학은 자연계의 보편적 진리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지식의 체계로써 인간의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언제든지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결론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과학의 유한함에 동의한다면 과학과 신앙은 절대 배치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손봉호 : 좋은 지적입니다. 박 교수는 현대 과학 철학을 상당히 올바르게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과학 철학에서는 일부 과학자들하고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계속 바뀌었지 않습니까? 지적하신 것처럼 성경이 과학적인 책은 아니거든요.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계시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과학 용어로 성경을 쓰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학과 신앙의 갈등을 이야기할 때, “정말 성경을 올바로 이해했느냐?” 그리고 “과학을 바로 이해했느냐?”라고 물은 다음에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윤헌준 : 저는 공학을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해 생각해 봤었는데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맘몬주의(mammonism)에서 벗어날 것을 권면하곤 하거든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공학의 가치는 결국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내는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생산 단가를 낮추려고 저급한 부품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 그게 결국 어떤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 거잖아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제품을 만들 때 조금 더 정직하게 설계하고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공학 윤리적 가치들을 학생들과 나누곤 하거든요. 단순히 취업하기 위해 좋은 학점을 받으려는 공부가 아니라, 맹목적인 ‘인간 강화’(human enhancement) 기술이 아니라, 공학을 통해 이웃을 섬긴다는 사명감을 가지도록 강의해요.
손봉호 : 저는 맘몬주의와 더불어 환경오염 문제도 좀 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 강의에서도 그게 더 강조되면 좋겠습니다. 또 교육계 계신 두 분도 말씀해주세요
김샛별 : 저는 미국에서 연구할 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개발한 시민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증명하는 연구프로젝트의 팀리더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데이터 수집의 일환으로 사용한 보조 문항 중, “너의 성별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팀 내에서도 이 문항에 대해 몇 개의 옵션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겁니다. 통상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남자’와 ‘여자’ 옵션이면 충분하다고 보겠지만, 요즘에 교육학에서는 성별을 표현할 때도 ‘sex’(생물학적 성별)가 아닌, ‘gender’(사회적 성별)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할 정도로, 성에 대해 굉장히 유연한 시각으로 봅니다. 제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성별 문항을 '남','여'로만 구분해서 제시하는 게 학생들에게 소외감과 배제감을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면, “그 연구가 과연 교육적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전제를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향해 교육학을 공부해야 할지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손봉호 : 동감합니다. 역시 인문사회 쪽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무슨 100%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기도하면서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수밖에 없죠. 다만 원칙이나 진리,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제대로 쓰는 정도만 지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좀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합니다.
조지혜 : 저는 박사 논문으로 진보 진영의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을 연구했습니다. 보수 기독교 진영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운동을 하는 분들이었는데, 저는 이분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 교육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싶었거든요. 이 연구를 통해 우리 교육에 던져주는 의미나 시사점들을 찾고 싶은 저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그리스도인 교수님도 절반 정도 만났고, 또 어떤 교수님들은 저의 연구를 어떤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불온한 것으로 보셨던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나와 다른 지향을 가진 이야기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맞는가?”, “그 가운데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정치철학자는 개인의 고유한 ‘탄생성’(natality)을 상당히 강조하는데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하게 지어졌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갖고 현장을 보니까 우리 청소년들이 대학 입시에 노예가 되고 자기의 꿈과 ‘탄생성’을 잃어버린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인권을 다시 찾아주고 그들의 고유함을 찾아주는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세상에 있는 분들과 소통하는 데는 오히려 어려움이 없는데, 기독교 안에서는 저의 연구를 바라보시는 양극단의 시선을 체험하면서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보기 전에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나 의미를 찾아내는 학문적 논의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봉호 : 빨리 결론 내리지 마시고 계속 고민을 좀 하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정말 신실한 신앙적 입장에서 교육학을 연구하거나 또는 교육해보겠다는 분들을 만나서 열린 마음으로 토론을 많이 하는 게 좋아요. 로잔 언약(Lauzanne Covenant)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위스 로잔에서 약 40년 전에 존 스토트 목사님 중심으로 수천 명의 전 세계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그동안에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가 나누어져 있었지만 이 두 측면이 다 중요하다 하는 것을 결의했고, 이 결의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공신학 혹은 공공신앙이라는 것도 나왔는데요.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하는 신학이나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보고, 성경이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겠죠. 따라서 여러분이 현재 연구하는 분야가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윤헌준 : 요즘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여러 가지 기술적 이슈들이 대두가 많이 되고 있는데요. 세상이 공학을 통해서 때로는 불로장생을, 때로는 기술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거죠. 최첨단 기술 개발도 좋지만, 적정 기술을 통해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공학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축복의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 전도가 의도된 선행이 아니라,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소외된 이웃들에게 개발한 기술을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 공학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손봉호 :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손녀가 대학생인데, 적정 기술 클럽의 구성원이 됐다고 해서 칭찬을 했습니다. 저도 적정 기술에 관심이 많고 아프리카에 여러 번 갔다 왔거든요. 특별히 말라위에 가보니까 부인들이 물을 길으러 수 킬로미터나 가야해요. 그래서 거의 모든 여인이 다 목에 병이 생겨났어요. 이게 너무 안타까워서 잘 아는 어느 선교사가 한국의 물지게를 도입해서 남자가 물을 지게 하는 훈련하고 있어요. 간단한 기술들이 가난한 나라에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실 교육 선교회 이사장으로도 있습니다. 선교는 이제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학교를 세워주고 교육 수준을 높여가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김샛별 : 손 교수님께서 그 얘기를 해 주시니까 드는 생각인데요. 예전에 웨슬리 선교사님과 여러 교육학자가 독서 모임을 2년간 했었습니다. 그때, 토의로 나왔던 내용 중 하나가 학교의 공식 석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교사라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전도를 시도하는 것이 맞는지,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죠. 이제 학생 개개인의 인권이라든지, 학생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살다 보니, 복음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을 했었는데요. 그때 웨슬리 선교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교육자라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정말 잘하는 것이 가장 복음적인 것이다.” 그 대화 이후에, "내가 그리스도인 교육자로서 교육을 잘한다는 걸 뭘까?”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해왔는데, 방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잘 접목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내가 교육하는 학생이 이후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보다 더 훌륭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끔 좋은 마음과 생각, 인성의 '토양'을 쌓게 하는 것이 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을 하더라도 개인이 갖고 있던 특성과 기질이 단번에 바뀌진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신앙이 생겼을 때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게 그 사람의 인성적, 지적, 정신적 토대를 잘 가꾸게끔 돕는 역할이 제가 교육자와 교육학자로서 할 소명이라는 생각입니다.
손봉호 : 동의합니다. 교육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도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합니다. 솔직하게 교육자는 교육을 열심히 하고, 그것을 통해서 그 학생이 감화를 받아 “저 선생님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잘 가르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할 때는 분명하게 “나는 지금부터 전도한다.”라고 말하면서 전도하면 괜찮아요. 그러나 교육한다고 해놓고 전도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기술을 가르친다면 사랑으로 열심히 잘 가르치면 전도가 되거든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투명하고 솔직해야죠. 이제 우리 박사님들 각자 전공 분야에서 “나는 적어도 이런 비전을 갖고 연구를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기도하겠다.”라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조지혜 : 최근에 교육연구소에서 교수님들과 함께 ‘사회 정의와 공존의 교육’이라는 주제로 중장기 프로젝트를 세워보았는데요. 유네스코가 제안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동재(common goods)’ 교육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사회 정의와 공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교육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각자 속해 있는 학문 영역에서 이런 큰 청사진을 함께 그려보고 연구로 실현될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의 연구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세상에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계속 캠퍼스에 남아 있으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소장학자 분들처럼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들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손봉호 : 네, 아주 멋진 이상입니다. 공정성, 정의 이건 우리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성경에 ‘의’(義)라는 말은 사실 헬라어로 ‘디카이오스’(δίκαιος)인데 ‘정의’(正義)하고 같은 단어예요. 구약 성경에는 정의가 굉장히 강조되어 있거든요. 따라서 우리 기독교 사랑은 정의를 포함하고 있고, 이 정의가 결여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막연하게 그저 평등하고 정의롭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결국 약자를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정의로운 사회인이 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성공이에요. 따라서 저는 반드시 정의가 교육의 밑바탕이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방금 조 박사가 얘기한 ‘자부심’이라는 말도 굉장히 강조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성경이 가르치는 위대한 사랑, 정의를 알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입니까? 이것은 교만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각자 이 자부심을 가지면 쩨쩨한 이익을 추구하지도 비겁하지도 않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모두 근본적인 자부심을 가져라.”라고 그렇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김샛별 : 자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 학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증명하고자 하는 바를 검증하는 데에 필요한 연구자로서의 능력을 잘 갖추되,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직함과 유능함을 두루 갖춘 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그리스도인이자 학자로 살기 위해, 저 자신이 지적 존재이기 전에 영적 존재라는 것을 계속 인지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어가되, 학술 활동에서도 엄격함을 유지하고 소홀함이 없게끔 부지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자는 특히 학술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덜 정직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발견한 것을 빨리 발표하고 싶고 단기간에 업적을 쌓고 싶은 마음에 조심성이나 엄격함이나 추후검증 없이 내 업적에 유리한 대로 결과를 종결을 시키지 않고, 주님 앞에서 정직하고 실력있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손봉호 :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 학자의 정체성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과 행동을 통해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인테그리티’(Integrity) 정직성이 포함돼 있지요. 그것을 잃어버리면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죠. 따라서 ‘인테그리티’는 모든 학자에게 아주 중요하고요. 사실 우리 한국 학자들에게 제일 부족한 것이 이것입니다.
박정우 : 지질학으로는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첫 번째로 명령하신 게 있어요. 모든 생물을 잘 ‘다스려라’ 이것이 영어로는 ‘매니지’(manage)로 되어 있거든요. 따라서 이 ‘다스리라’는 말은 단지 다른 피조물을 착취하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너무 이 지구를 착취하고 이익 수단으로만 삼지 않았나 하는 부분이 안타깝고요. 그래서 지구환경과학 연구자로서 이런 부분들이 현재 일종의 덫처럼 옥죄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논문 다작을 위해 타협하지 않으면서 ‘인테그리티’를 잃지 않도록 한다는 겁니다, 사실 제 연구 과정을 학생들이 다 보고 있기에 그리스도인 학자가 세상과 구별되어 있지 않은 연구의 과정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모습으로는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봉호 : 네, 성경에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잘못된 번역으로 지금 신학자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복’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히브리 말로 ‘돌봄’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여러분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학자들이니까 여러분의 후배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서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씩 해주세요.
박정우 : 저는 지구과학을 하는 후배들이나 넓게는 자연과학을 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 그다음에 인간이 만들어 낸 이 과학의 유한함을 인지한다면 과학과 신앙은 결코 상충할 수 없습니다.
김샛별 : 저는 학업과 연구를 꿈꾸는 후배들한테 “모이기에 힘쓰라”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자는 일반적으로 조금 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직업이란 점에서, 고립되거나 자신의 생각에 갇히기 쉬운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가치관과 상충하는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듣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수님도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주셨듯이, 신앙이 있는 연구자, 교육자들이 계속적으로 학업 공동체로서 모이기에 힘쓰면서, 학문 세계 뿐 아니라 사회를 품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시너지를 길러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헌준 : 경직된 근육을 조금은 이완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산에 올라갈 때 나무가 왜 이 위치에 있고 왜 이렇게 생겼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자연경관을 감탄하고 맑은 산소를 마시잖아요. 학문도 그 자체를 누리고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요. 하나님께서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탄성을 내뱉으셨잖아요. 우리가 너무 ‘기독교 세계관적 학문’을 한다는 이분법에 갇히면 오히려 이 말이 또 다른 신앙의 게토화를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세계인 전공 영역 자체를 누리고, 비신자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기독교 세계관적 삶과 학문을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조지혜 : 저는 우리 이웃과 학문 세계를 더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고 배워보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저의 경우 공부에서 한동안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결국은 이 모든 여정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누구든 “나는 왜 직진으로 가지 못하고 이렇게 에둘러서 갈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나의 학문 여정을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손봉호 : 좋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여러분과 대화하면서 굉장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 세대보다 월등하게 우수하다. 신앙과 학문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건전하고 성숙해졌다.”라는 그러한 느낌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같은 분들이 좀 많이 일어나서 우리 한국 사회와 교육에 이익이 되고 특별히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고 또 우리 학계에도 크게 활약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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