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저출산과 돈
엄마의 오랜 진통 끝에 아기가 첫울음을 울며 세상에 나온다. 대기 중이던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란 노래가 들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송에 부모는 감동을 받는다. 둘째도 같은 산부인과에서 낳았는데, 두 번째 듣는 음악에서는 감동이 반으로 줄었다. 아기와 함께 이 산부인과를 나가기 전에 하는 모든 일에 신용카드 결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중 산후조리는 상당히 고가이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와 분리된 채 바구니에 있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생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 출생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저출산만큼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한 이슈도 없다. 부동산 문제, 그로 인한 불안정한 주거, 사교육비 문제, 보육시설 부족, 수도권 집중화, 과잉경쟁 시스템 등. 최근에는 방송이나 SNS에서 비혼과 저출산을 부추긴다고도 한다. 지난 10년간 혼인 건수가 32.2만 건에서 19.2만 건으로 40%가 감소했고, 합계 출산율도 1.19명에서 0.78명으로 34% 감소했다. 다양한 문제들이 얼키고 설키어 저출산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나는데,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돈 문제가 자리 잡고 있어 보인다.
결혼과 출산의 인식 변화
모든 사회 문제가 그렇겠지만, 혼인 감소와 저출산의 원인도 사회 구조와 개인의 인식 두 차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국가는 청년층이 결혼을 못하고 자녀를 못 낳는 이유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막대한 세금을 들여 출산 장려를 해왔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의 차원에서 결혼을 안 하고 자녀를 안 낳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교회 청년들을 대상으로 일상적 주제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다루어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많은 청년이 결혼을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청년들도 결혼을 안 하는 또는 못하는 원인을 경제적인 문제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청년들의 결혼관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음을 이해해야 한다. 팀 켈러(Timothy J. Keller)는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에서 결혼이 공익을 위한 공적 제도에서 개인의 만족을 위한 사사로운 계약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부모님의 걱정 때문에 등 가족의 이익을 위한 공적 의미로서의 결혼관이 거의 사라지고, 대신 개인의 로맨스, 개인의 만족감을 위한 사적 의미로서의 결혼관으로 대체되고 있다. 부모나 가족의 기대나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다하는 책무로서의 결혼이 아닌 나와 잘 맞는 이성을 찾아 나의 부족함과 욕구를 채우는 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결혼식 풍경에서도 자주 드러나는데, 엄숙한 주례사를 듣고, 신랑이 부모님께 큰절하면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애틋한 모습이 사라지고 각종 결혼사진과 영상, 신랑과 신부의 퍼포먼스가 대신하고 있다.
출산도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가계의 후손을 잇는다는 의미보다 잘 낳고 잘 키워 엄마, 아빠로서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는 사적 영역이 되었다. 성과를 내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니 좋은 학군의 아파트와 막대한 사교육비가 필요하다. 결혼도 출산도 공적 책임의 영역에서 사적인 성과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대다수의 가계와 개인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 어떤 행위를 사적 의미에만 묶어둘 때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적 의미가 커지니 청년들은 그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안 하는 것을 선택한다.
공적 의미 위에 사적 의미 올리기
하나님은 인간을 개인별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게 하셨다. 국가는 청년들이 결혼도 많이 하고, 자녀도 좀 많이 낳기 바라지만, 청년들은 지금 당장 자신의 생존 문제가 더 시급하다. 개인과 공동체의 소명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 사역을 같이 했던 한 전도사님이 손등을 겹쳐 보이며, 공동체라는 종이 위에 개인이라는 반투명 종이를 겹치는 것을 비유하셨다. 나는 이 비유를 발전시켜 포토샵(Photoshop)으로 설명하고 싶다.
포토샵에서는 작업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장의 이미지를 겹쳐 레이어로 작업을 하는데, 각 레이어의 불투명도(opacity)를 설정할 수 있다. 공동체의 소명이라는 배경 위에 개인이라는 레이어를 올려본다. 불투명도 설정은 그림을 작업하는 크리에이터가 설정한다. 어떤 이는 80%, 어떤 이는 50%, 어떤 이는 30%로,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로 편집하기 위해 수치를 조절한다. 그러나 불투명도를 100%로 설정하여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레이어 작업은 무의미하다. 레이어 없이 한 장으로 그리면 작업의 효율이 떨어진다.
청년층들은 비록 어려운 여건이지만 결혼과 출산의 공적 의미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배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서 어느 정도 투명한 것이 좋을지 지혜롭게 판단하면 좋겠다. 동시에 국가와 사회는 청년층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공적 의미를 인식하고 싶도록 그래서 자신의 레이어를 투명하게 만들고 싶도록 좋은 배경 그림을 그려내는데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산부인과의 서비스 품목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진심어린 축복송으로 느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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