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필자는 대학에서 16년 동안 가족복지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수업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되었다.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가족의 분야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대 주제인데, 국내에서의 가장 큰 변화로는 결혼율과 출산율의 저하와 함께 찾아온 1인 가구의 증가라 볼 수 있다. 건강가족지원법은 2018년 법 개정을 통해서 가족의 정의에 ‘1인 가구’를 명시하여 1인 가구를 가족으로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미 서구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넘어 다양한 동반자들을 가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고 국내에서도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 놓여있다. 결혼율은 줄어들고 있지만 ‘비친족 가구수’는 늘어나고 있으며, 결혼을 벗어난 출산을 허용하는 태도 또한 점차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는 2020년대를 살아가며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출산율 감소는 이러한 가족 변화의 맥락 안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겠다.
저출산과 사회복지적 위기의 핵심 주제는 가족의 돌봄 기능과 복지제도 간의 긴장 관계 및 탈가족화와 가족화 간의 긴장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던 돌봄의 기능이 제도적으로 공적/사적의 책임으로 이양되고 있음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제정된 이후 장기적 관점에서의 어르신들 돌봄에 국가는 적극적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일정 자격에 이르러 급수를 받게 되면 요양급여 관련 시설을 이용하거나 시설에 입소하여 남은 삶을 유지하게 된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자녀 양육과 관련된 지원도 확대되어 올해 처음 시행된 부모 급여는 한 자녀당 70만 원씩 모든 자녀 출생시 2년 동안 제공되게 되었는데, 내년부터는 월 100만 원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족복지 정책을 통한 부모권과 양육권 등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적 지원과 노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족은 급속히 탈가족화 쪽으로 선회하고 있으므로 때로는 복지정책의 확장이 가족 기능을 축소시키고 결국 가족이 없어도 혼자 잘 살 수 있는 사회로 진전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측면에 대해 가족과 복지제도가 함께 손을 맞잡고 한참을 더 걸어가야 그 평가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라는 지표는 단지 출산을 높인다는 의미보다는 출산한 자녀가 과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가족 만들기를 지연하거나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즉, 잘 해내기 힘든 세상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정말 한 아이를 잘 키워내는데 충분한 곳인가?”라는 질문이 출산율 저하라는 아픈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출산율 증가에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율 외의 많은 사회 지표들은 한국 사회에서 한 아이가 천부가 부여한 생명으로 와서 환대받으며 건강하고 안전한 아동기를 보낼 수 있는지 자성하도록 만든다. 최근 갓 태어난 영아에 대한 살해 및 유기가 높아지고, 아동학대 또한 갈수록 그 잔인함이 드러나고 있다. 아이들은 경쟁 사회에서 좋은 대학이라는 이름을 달기까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무한경쟁에 뛰어들게 되고, 막상 그 이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어도 그 질주는 멈추어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유지된 가족이 과연 행복한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결과만 보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가정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1998),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2000)은 제정된 지 20년이 조금 넘어 법과 제도에 의해 그 현상이 드러나고 있으며, 노인장기요양보험(2008)이 시작된 지 이제 15년이 되어간다. 이러한 법 제도와 서비스를 통해 그동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가족 내부의 삶 속에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희생되던 가족 문제의 실체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SNS와 예능 프로그램 등의 진화로 묻어두고 살았던 가족관계의 갈등과 문제들이 부부, 자녀 양육, 데이트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그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가족(이기)주의에 묻어두었던 민낯이 드러남과 동시에 실망과 불안은 커져가게 되고, 어쩌면 변증법적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반(反)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통계청의 한 조사를 인용하면, “부모와의 관계가 화목하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들에 비해 11%가 넘게 “자녀가 있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즉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은 행복하다”라는 경험이 우리가 해왔던 그림자와 부작용들을 뛰어넘을 때 희망의 방향으로 커브를 돌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합(合)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지치지 않고 달려야 할 것이며, 기독교 공동체는 양적 확산이 아니라 질적 관심을 가지고 창조 시부터 부여된 가족의 중요성과 본질이 어떻게 구현되도록 할 것인지 인내함으로 방향을 제시하며 함께 이 긴 여정을 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각주>
* 국가법령정보센터, 2023
** 청년층이 "내 가족을 만들고 싶다" 느끼려면? 출처 : SBS 뉴스 (2023.8.29.).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325035&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325035&plink=ORI&cooper=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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