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이 말씀에서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과거를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것과 유연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지난 삶은 과거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유연하게 살아오려고 노력한 삶이었다. 나에게는 시련이 여러 차례 왔는데 그때마다 시련의 원인을 파악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아픈 과거(트라우마)를 주님 앞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새 시대로 넘어가려고 노력하였다. 1년간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재수할 때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고등학교 시절의 나태함과 교만함을 회개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히 준비하여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언어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여서도 지도교수와 잘 안 맞는 바람에 5년간 지속해 왔던 박사과정을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과거의 잘못을 확실하게 정리하며 지도교수 탓을 하기보다는 나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였을 때 놀라운 평안과 기적이 찾아 왔다.
가족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손을 잡아준 분은 연세대 의과대 교수로 있는 친형 박해정 교수였다. 뇌 과학을 전공하는 형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기법을 활용하여 언어학을 뇌 과학과 접목하여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하였다. 예일대에서 <언어와 사고>라는 제목의 수업을 들을 때 fMRI라는 기법을 활용하여 언어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뒤 막연하게 그 기법을 활용하여 연구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졌는데 그 꿈이 기적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한 말씀이 전통과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 겸손하고 유연한 마인드를 의미한다고 볼 때, 내가 7년간 공부해온 순수이론 언어학 분야를 고집하지 않고 신경언어학이라고 하는 최신 분야를 연구하기로 결정한 것은 돌이켜 보건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fMRI라는 최첨단 기법을 활용하여 언어가 뇌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처리되는가를 연구함으로써 풍부한 연구의 광맥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세대 뇌 과학 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미국 밀워키 소재의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 박사과정에 다시 입학하여 보통 5년 이상 걸린다는 박사학위를 2년 반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그 학교에서 예일대학교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인자하고 다정다감하신 지도교수를 만나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post doc 과정을 위스콘신 의과대학에서 짧게 끝낸 뒤 귀국하여 강사 생활을 1년 반 정도 한 뒤에 명지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 그곳에서 5년 반 정도 강의와 상담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등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교수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더 큰 부르심이 있어서 경희대학교로 학교를 옮겨 교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복음의 불모지와 같은 이곳에서도 가급적 상담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경희대 기독교수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연치 않게 명지대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만나서 교제를 나눴던 김태황 현 기독교학문연구회 회장님의 권유로 <신앙과 학문> 편집장 일을 맡게 되었다. 다른 학회 편집장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두 학술지의 편집장 일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의미 있는 일이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맡기로 하였다. 맡고 보니 전공 학문과 기독교 세계관을 유연하게 접목하여 논문을 쓰시는 교수님들이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고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른 그리스도인 학자들도 기독교 세계관을 전공 분야에 투영시키는 논문들을 <신앙과 학문> 저널에 많이 투고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교 세계관의 지평을 더욱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시대가 요청하는 학술지다운 학술지를 만들어나가는 데 교수님들의 많은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린다.
언젠가 어떤 철학전공 교수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인 내가 어떻게 철학적 물리주의(유물론) 관점이 지배적인 뇌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유물론적 자연주의 세계관의 기저에는 인간 및 뇌에 환원되지 않는 비물질적, 비환원적 속성들이 없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정말로 뇌 기능에는 환원되지 않는 비물질적 속성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의 시스템 뇌과학이나 정보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뇌 신경을 구성하는 연결 구조와 뇌 신경이 처리하는 정보는 물리적 환원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뇌는 물리적 속성을 가진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독특한 연결 구조 형태로 정보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비물질적인 속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인 J.B.S. 홀데인도 인정하였듯이 “내 정신 과정이 전적으로 내 뇌의 원자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면 내 신념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내 뇌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물질과 구분되고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무엇’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없다면 존재도 인식도 과학 자체도 불가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이 유물론적 물리주의 세계관보다 폭넓고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설명하는데 더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리주의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고유성, 개체성, 개인이 가지는 경험들은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질 뇌의 물질적 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과학을 통해 얻는 지식이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지 그 합리성의 근거를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 뇌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마음에 두신 생물학적 계획의 결과물이며 영혼과 구분되는 실체이다. 이처럼 인공지능(AI)과 뇌 공학, 가상현실 등의 대전환과 탈인간화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세계를 정확히 알고, 기독교 세계관이 가장 탁월하며 현 세계와 미래 세계에 변치 않는 유일한 대안임을 변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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