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인간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언제서부터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꼈으며, 왜 세상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아름다운 세상’은 의심할 여지 없는 당연한 진실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자연(Nature)으로서의 세상이던지, 사회(Society)로서의 세상이던지 이것은 인류에게는 자연스러운 실존의 명제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존재의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언제나 그랬던가?
자연으로서의 세상은 인간과 관계없이 과거에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아름답다. 하지만 사회로서의 세상은 인간이 존재한 이후로 아름답지 못한 면이 많았다. 현재는 어떨까? 자연으로서의 세상 곳곳에 오염 요소가 확산 중이며, 자연은 그야말로 신음하고 있다. 사회로서의 세상은 상태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유토피아를 꿈꾸어 온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사회를 해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서 지구열대화(Climate Boiling)로 들어서게 된 이유가 인간의 존재 때문이라는 자성은 정당한 면이 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류세(Anthropocene)가 가져온 비극이라 하겠다. 인간 세상은 유토피아적 희망에서 점점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닌가.
인류 멸종에서 구원으로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은 지구촌이 디스토피아로 들어가는 종말의 암울한 분위기를 그린다. 가상의 시간 2027년도. 18년 전부터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지구촌은 불임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맞고 있다. 18년 전에 태어나 기적의 아이로 불리던 소년마저 죽임을 당하는 무법천지로 세상은 변해간다. 곳곳에서 불법과 테러가 벌어지고, 정부군은 이를 저지한다며 무차별 폭행과 살상을 가한다. 더구나 생존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민족 대이동 수준으로 피난 가면서 각국은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그나마 영국은 사정이 좀 낫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테오는 아내와 헤어지고 생의 기쁨을 잃고 그저 생계를 위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갑자기 나타난 아내. 그녀는 이주민대책 게릴라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 남편 테오에게 ‘키’라는 여인을 인간 프로젝트 팀에게 안전히 인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인류가 전면적인 불임 사태를 맞고 있어, 인류 멸종은 언젠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인간 프로젝트 작전은 지구상에 다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게 한다는 인류를 위한 생존작전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게릴라들이 위협하고 정부군은 질서를 명분으로 과격한 통제를 하였다. 도시를 빠져나가 해안가에서 인류 프로젝트팀을 만나는 일은 생명을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테오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임신한 여인 키는 우여곡절 끝에 아기를 낳는다. 여아였다. 18년 동안 생명의 탄생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난민보호 작전을 펼치는 게릴라들도 전투를 멈추고, 이들을 소탕하던 정부군들도 공격을 중단한다. 그들은 모두 경이로운 새 생명의 등장에 경건한 태도를 취한다. 테오는 키와 아이를 해변까지 인도한다. 하지만 테오가 피를 흘린다. 총상을 입고 만 것이다. 테오가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중 희미한 안개 속에서 인간 프로젝트팀이 나타난다. ‘미래호’(Tomorrow)가 키와 아이를 구출한다.
사랑과 생명이 희망이다
테오는 아내와 사이에 사랑스런 자녀를 얻었다. 선천적으로 폐가 약했던 아이는 지구촌에 밀어닥친 팬데믹으로 생명을 잃었다. 그 후 테오는 낙망 가운데 살아갔다, 사회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던 그가 인류의 멸종을 막게 되는 인간 프로젝트에 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8년 만에 처음 탄생한 고귀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생명을 바쳤다. 불임(不姙)은 곧 인류 멸종이며 이는 지구촌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새 생명의 탄생을 보게 되다니. 테오는 전적으로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한 테오를 돕는 사람들 모두 믿음으로 행동하고 때로 목숨을 바친다.
아기의 탄생이 곧 인류의 희망이다. 인간이 잉태하지 못하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임신과 출산으로 세대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너무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시대정신(Zeitgeist)은 이를 부정한다. 이러한 비인간화 되어가는 시대에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인류 멸종이라는 현실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생명’을 ‘생명’을 다해 보호하며 헌신하는 사랑과 그로 인한 생명의 이어짐이 희망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디스토피아에서 구원으로
가상의 설정, ‘영국 2027년’은 예견되는 종말 상황의 한 알레고리이다. 방사능이나 환경 오염 등으로 불임이 가속화되어 더 이상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류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아름다운 지구촌, 유토피아를 꿈꾸던 세상은 서서히 디스토피아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생명 탄생이 멈춘 세상이라면 희망도 꿈도 없어질 것이다.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는 그만큼 중요하다. 다음 세대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의 가치와 목표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나라 상태는 심각하다.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최하위이며, 서방 선진국가들 보다 낮은 수치다. 이대로 간다면 백여 년 뒤에 대한민국은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여러 부문에서 국가 존립의 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인간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돌입하기 전에, 온 백성이 함께 ‘사랑과 생명’으로 국가적 구원 프로젝트를 가동시켜야 할 것이다. 복음 안에 사랑과 생명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희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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