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그날도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 화랑가로 향하던 참이었다. 5호선 오목교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한눈을 팔다가 우연히 서울시의 시정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주관한 ‘아빠 엄마 행복 프로젝트’에 입상된 사진 작품을 본 순간 ‘진동’ 같은 것이 내 몸에서 일어났다.
‘아빠 엄마 행복 프로젝트’ 입상작들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부모와의 동행 장면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은 너무 익숙해 새롭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선작 중의 한 점 <첫 만남>과 마주친 순간 나의 심장은 꿍꽝거리기 시작했다.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와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어떤 미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사 게시판에 '아빠엄마 행복프로젝트' 입상작 인쇄물이 걸려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순간, 곧 작고 소중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던 35년 전의 감격스러웠던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보다는 벅찬 감정이 먼저였다. 아이에게서 받은 것이 준 것에 못지않게 컸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과 성장 과정에서 느낀 기쁨과 경이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만일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이가 없었더라도 우리 부부는 두 마리 노견과 함께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생의 의미를 체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전에는 상상조차 할 없었던 어떤 힘에 사로잡힌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이 부모에게는 제2의 천성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러한 천성을 발휘했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정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주위의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존재로 내면의 중심적인 부분을 바꾸게 된 것은 값진 소득이다.
저출산에 대한 경고음이 꾸준히 들려온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그 여파는 대학까지 확산하여 많은 학교가 심각한 구조조정을 넘어 존폐 위기로까지 치닫는 실정이다. 항간에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세계 지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수습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에게만 맡기는 것이 능사일까? 이 문제는 마땅히 성경적 가르침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출산을 하나님의 상급으로 간주한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배우며 완성해 가는 공동체이다. 가족의 번영이 전제될 때 공동체의 번영도 상상할 수 있다.
(신흥우, 콘써트, 혼합재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도시 속의 군상을 그려온 서양화가 신흥우의 작품이 떠올랐다. 신흥우의 작품에서 도시는 때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기도 하지만 따듯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꿈꾼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다른 모습과 동작을 취한다. 그들은 힘을 합쳐 <콘서트>를 공연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연주는 사람들을 북돋아 주고 활력이 넘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밀어주고 끌어주는 등 공공선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이해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께서 일찍이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국운을 다한 나라에 복음의 빛과 함께 발전된 문화를 선사하셨고,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며,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이러한 눈부신 도약을 비웃는 듯하다. 현실의 짐을 감당하지 못해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가지는 일을 꺼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진미정 교수는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이유의 하나로 경제적인 불안, 곧 결혼식에서부터 자녀 출산과 양육, 교육 등 거의 모든 단계마다 요구되는 ‘표준화된 모범답안’을 든다. 결혼은 멋진 웨딩홀이나 호텔에서 해야 하고, 신혼여행은 알만한 휴양지로 떠나야 하며, 유모차는 어느 브랜드, 육아를 위해선 최소 20평대 아파트는 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여기에 학군 좋은 지역은 필수조건이다. 결혼 기피 현상의 배후를 파보면 행복을 물신화하는 세태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그런 문화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런 풍조의 상당 부분은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 앞에 높은 현실의 벽을 쌓은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평생 저축해도 사지 못할 만큼 고가의 아파트 가격, 젊은이들을 좌절시킨 책임은 온전히 기성세대에게 돌아간다.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워졌으니 면목이 없다.
공동체의 번영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비전이기도 하다. 모쪼록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쓰임 받는 그릇이요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 수 있는 풍요의 땅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4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