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동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한 사회’(good society)에 대한 논의는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오래된 주제이다. 시대를 넘어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데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깊이 있게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 사태 이후에 뉴노멀을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표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되는 주제이다.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이전의 잘못된 관행과 관습을 과감하게 개혁하여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동선의 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신교는 사회 구성원들이 따라야 할 규범을 제시해야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 교회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 사태 동안 보여준 교회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하나의 이익집단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전래 초기 한국 개신교는 사회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를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오늘날의 개신교에서 공공의 선이나 선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 삶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자신의 신앙이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에 따라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 역시 개개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훈련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밖에서도 일반인들과는 다른 더 엄격한 도덕 기준에 따라 일반인들의 삶의 양식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삶의 무대로 여기며 자신의 신앙을 공공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거나 자기 가족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토론하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시민의 모습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공적인 기준에 의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것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도 고려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자신의 기준만 아니라 공공의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영역에서 표출되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지금은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전히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성경에 바탕한 공동체는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이웃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공동체는 타인을 위한 삶을 지향해야 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공동체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를 이루어 유기체로 하나된 지체임을 인식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사랑의 나눔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이 모여 시민사회를 이룸으로써 시민사회의 원리가 약자를 보호하는 공동체 원리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사회 임무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시민사회를 위한 결속에 가장 기초가 되는 조직이다.
또한 지역사회 안에서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시민적 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한 작동원리이고, 그것이 구현되는 것이 시민공동체라면 이것을 지역사회라는 구체적인 영역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마을 단위로 쉽게 시도될 수 있다. 교회가 시민 연대를 통해 마을공동체 운동에 참여한다면 우리 생활 속에서부터 공동선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가진 자원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효과 있게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 역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마을공동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세우고 실현하는 공공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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