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는 명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김지원 배우가 구씨인 손석구 배우에게 했던 이 말이다.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 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 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그리고 이어서 김지원 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윈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여기에 기독교가 공공선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다 들어있다. 우리의 신앙은 사적일 뿐 아니라 왜 공적이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기독교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그리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궁극적인 해방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성공이나 건강이나 개인의 경건 같은 사적인 것에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고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은 이후에 벌어질 일에만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나아가 종말론적인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미리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하나님 나라(천국)를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철저하게 실현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공공선과 무관할 것이다. 또한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본다면, 그때의 하나님 나라는 공공선과는 상관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양과 사자가 함께 뛰어노는 나라라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나라라면, 포로 된 자가 돌아오는 나라라면, 눈먼 자가 다시 보는 나라라면, 억눌린 자를 해방되는 나라라면, 차별 때문에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일 없이 누구나 모두 겸상을 할 수 있는 나라라면, 결핍으로 배고프지 않은 잔치의 나라라면,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은 공공선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소망을 가지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 삼 남매의 이름이 차례로 기정, 창희, 미정이다. 이 드라마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희망을 노래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까. 아무튼 그리스도인은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기 때문에 ‘어차피’ 이 세상은 문제가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기독교는 공공선과는 별로 관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소망의 태도가 “어차피”가 아니라 “언제까지”라면 말은 달라진다. “주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 지금 주무시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이제 이러한 엉망진창의 세상을 눈앞에 두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제 지겹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공공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뿐 아니라 그 나라를 미리 살 때 기독교의 공공선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나는 여기서 일부러 하나님의 나라를 산다고 표현했다. 지난 20년 동안 교회는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많이 했다. 나아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영향력이 더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세상은 전혀 거룩하게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는 더 세속적으로 바뀌었다. 세상을 변혁하자고 했지만 교회가 더 세속화가 된 것이다. 나는 기독교가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미리 사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고등하교 다닐 때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사후세계에 갔다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이 본 천국을 묘사한 책이다. 그 책의 내용은 한 문장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책의 제목만큼은 나에게 두고두고 영감을 주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공공선에 기여하려면 그 방법은 겸손하게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천국을 소망하려면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살아서 천국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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