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소재한 성암교회(예장 통합)는 오래전부터 지역사회에서 공공선(Public Good)과 공동선(Common Good)을 활발하게 실천하는 교회로 알려졌다. 교회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말씀에 따른 섬김을 모범적으로 실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여러 조사에서 최근 한국 개신교는 세상으로부터의 기대와 영향력이 감소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의 공공선, 공동선 참여는 어떻게 가능할지 조주희 담임목사님과 함께 그 혜안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인터뷰어 : 오민용 (고려대 법학연구원 전임연구원)
일시 & 장소 : 2023년 11월 15일(수), 성암교회 사무실
정리 & 사진 : 석종준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오민용: 목사님 안녕하세요? 성암교회는 오래전부터 지역사회와 함께, 공공선(公共善)‧공동선(共同善) 실현을 위한 많은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목사님은 현재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로도 섬기고 계시지요. 그동안 교회가 섬겨온 대표적 사회봉사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 우선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주희 : 그리스도인들은 공공선‧공동선이라고 하는 용어를 알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주신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알고 있는데요. 저는 이 계명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생각,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된 세계이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니 교회는 세상도 사랑해야 하고 본질적으로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성암교회는 우선 지역사회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또 전교회가 할 수 있는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전문가들을 통해서 조사했고요. 내린 결론 중 하나는 “교회가 지역의 아이들을 좀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민용: 이렇게 성암교회가 남다르게 세상 속에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공선, 공동선 활동을 역동적으로 하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까요.
조주희 : 첫째, 제가 어렸을 적 교회 경험입니다. 농촌에서 초등학교까지 자랐는데요. 당시 교회에 대한 기억은 교회가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목회자도 지역에 굉장히 중요한 리더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동네일도 많이 하시고 주일과 수요일에만 교회 일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할 정도로 늘 마을의 일원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목회자가 되어서 도시 교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섬처럼 고립되어 있더라고요. 일반 회사도 물건 하나 팔려고 시장 조사도 하고, 그리고 그 시장에 기여를 통해서 이미지를 높여서 물건을 팔아먹지요. 따라서 교회도 지역사회를 선교적 대상으로 본다면 좀 달라져야 한다는 것, 또 세상을 향한 태도가 우리는 거룩한 영역이고 저쪽은 완전히 타락한 영역으로만 바라보는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둘째, 성암교회가 예배당 옆에 빌딩을 하나 지으면서 이것을 지역사회도 함께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문가들에게 구체적 컨설팅을 받아서 시작했기에 아무래도 좀 더 전문성이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민용 : 성암교회의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들은 하나하나가 정말 밀도가 남다르고 체계적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조주희 : 큰 기둥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개발 자체가 지역의 욕구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교회 잘하니까 우리 교회도 한번 따라서 잘해보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는 교회가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어도 생각도 세상과 분리되어 있기에 아무래도 다리 역할을 해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성암교회는 그런 선택을 한 거죠. “전문가를 통해서 개발도 하고 진행도 하자.” 그 때문에 더 체계적인 사업들이 개발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오민용 : 최근 '한국 갤럽'이나 '지앤컴 리서치' 등 전문 기관의 종교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안타깝게도 한국 개신교는 타종교에 비해 남다른 포교 열정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영향력이나 그 선호도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조주희 :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인 모습과 세상에 대해 닫힌 사고방식에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그냥 일반적인 용어인데 세상에는 폭력적으로 들리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은 결국 개신교가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만 생각하는 집단이구나”라는 느낌을 주어서 고립되고 소통이 힘들었던 측면이 가장 강했다고 보고요. 둘째로, 여기에 더 불을 지핀 것이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비윤리적인 것까지 보태져서 이 두 개가 결합되고 구조화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윤리적 요소가 가장 핵심이라고 봐요. 이렇게 신뢰를 잃다 보니 세상이 개신교를 이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일단은 무조건 편견을 가지고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교회의 사회봉사와 관련해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이제 교회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조금 잘못됐다고 봅니다. 가령 “장학금 주겠다. 무엇을 도와주겠다. 또 필요를 채워주겠다.” 이러한 이야기는 섬김의 자세가 아니라 굉장히 시혜적인 관점이거든요.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제 뭘 해주겠다가 아니라 그냥 함께 사는 것, 함께 사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아파하면 그 아픔 속에 함께 있고, 또 그걸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들 문제를 우리가 풀어주겠다”라는 태도는 결과적으로는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보지요. 우리 예수님도 그냥 함께하시며 섬기셨지 무슨 조직을 만들어놓고 “내가 능력 있으니까 해줄게.” 그런 건 아니셨거든요. 그래서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 섬김의 자리를 회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민용 : 우리 사회는 이전에 비하면 많은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이른바 국가복지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과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봉사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조주희 : 저는 차별점 이전에 이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갈 때 두 가지 대상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지역의 주민들, 즉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국가 조직이든지 행정조직이든지 NGO든지 복지기관 등이 있는데, 그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 기관들과 협력하는 문제도 교회에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열심히 해온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목사님이 교회를 위해서 뭘 해야지 그렇게 하면 되나 하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여전하거든요. 그러니까 교회를 설득해서 함께 그 발걸음을 맞춘다고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고 늘 저항이 있어요. 특히 이제는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니까 교회가 다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러나 저는 지금은 교회를 일으켜 세울 때지 다른 것을 할 때는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세상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비본질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신학적 전환과 전략이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국가복지와 교회의 사회적 봉사의 차별성은 따뜻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복지가 확장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허점이 하나 생긴 게 있는데요. 도울 때 제도적 범위 안에서 업무적으로 소화하기에 상대적으로 차갑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야말로 성경에 기초한 따뜻한 복지로 세상을 섬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 아닌가, 국가복지를 보완해서 따뜻한 온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섬김 방향이 아닌가 그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오민용 : 성암교회는 저소득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지역사회 특성을 고려해서 즉 ‘방과 후 교실’, ‘다섯 콩 작은 어린이 도서관’ 운영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섬겨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보람과 열매가 있으셨을지요?
조주희 : 종종 질문을 받아요. “목사님 그래서 교회 학교가 몇 명 늘었어요?” 교회 내부적으로도 여전히 있는 질문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더 많이 섬겨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비판에도 직면합니다. 그런데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과 배려는 큰 힘이 됩니다. 저도 초등학교 시절까지 경험했던 사랑과 배려가 지금까지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신 거죠. 마찬가지로 지역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 교회에 뭐 하는 걸 했는데 그때 참 좋았다. 행복했었다.” 이거 하나로도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실 선물을 제대로 주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인사받을 때 최고 보람을 느낍니다. 이들이 우리 교회 교인들은 아니기에 이런 사랑과 배려가 오히려 신학적이고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어떤 할머니는 “우리 손자 힘들었는데 여기 다녀서 좋았어요. 교회는 십일조를 하는 거라면서요.”라며 천 원짜리 몇 장 넣으셔서 가져오셨는데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오민용 : 성암교회 '바오밥나무 까페'는 교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운영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와 목적을 듣고 싶습니다.
조주희 : 아주 간단합니다. 지역사회가 해달라는 것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를 위한 방식으로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지역사회가 교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어디까지일지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에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 교회를 위한 장소로 사용하지 않는다. 교회가 우리 거니까 우리 필요를 따라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포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셋째, 교회 모임을 이유로 시간을 변경시키거나 선점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시작할 때부터 지난 15년 동안 철저히 지켰습니다.
오민용 : 지역사회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그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시고 계시는지요?
조주희 : 우리 교회가 독거노인을 섬기는 봉사를 '안부 사역'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는 독거노인이 꽤 있으세요.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상당 기간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래서 은평구청에서 준 명단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드려서 식사는 하셨는지,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확인했고요. 식사가 안 되었을 때는 새마을 부녀회, 푸드뱅크 등에 연결해 드렸어요. 필요하면 병원도 연결해 드리는 봉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행히 국가가 손만 갖다 대도 소방서로 직접 전화가 걸리도록 장치를 해놨지요. 그래서 독거노인들의 필요를 다시 파악해보니, 밥은 해 먹겠는데 반찬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셔서, 우리 교회가 일주일 동안 드실 밑반찬을 제공하는 사역을 약 20명에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민용 : 교회를 통해서 이토록 적극적인 공공선‧공동선의 실천, 즉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이끌어 오시면서 언제 가장 큰 가치와 보람을 느끼셨는지요?
조주희 : 교회가 더 행복해졌어요. 교회가 이렇게 지역사회를 섬기면서 “우리가 좀 할 일을 하는구나”라는 나름의 자부심 같은 것들이 교우들에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경상비 겨우 맞추어내는 교회인데도 많은 비율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는데, 이는 모두 성도님들의 헌신 때문이라고 봅니다. 교회가 사회에 하는 일의 가치를 교인들이 잘 알아요.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는 봉사할 사람이 잘 모집이 안 되는데 오히려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면 모집이 더 잘 돼요. 그 모습을 보면서 교회가 그동안 교회답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인들이 자긍심을 느끼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 보람이고요. 또 하나는 지역사회가 함께 일하자는 얘기를 참 많이 해 옵니다. 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고 해도 너네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반응이었는 데요. 지금은 은평구청에서도 의식이 많이 전환됐고 그래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되었는데, 저는 그것이 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영향력이라고 보거든요.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민용 :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공공선‧공동선 참여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평소에 주시고 싶으셨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주희 : 저는 신학자도 이 방면에 탁월한 전문가도 아니라서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기보다는 내 삶은 나로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가 있고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기에 내 삶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의지로 사는 것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이들에게 마음을 주는 일부터 먼저 시작해서 이 마음이 커지면 일도 커진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청년 시절부터 이렇게 함께 사는 세상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고 이분들은 나의 삶에 일종의 에너지이고 또 에너지를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구나 하는 대상 인식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의 필요를 따라서 세상을 움직이겠다가 아니라 세상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라는 사고를 늘 가지고 살아가시면 자기 삶의 존재 가치가 더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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