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베트남 MK(Missionary Kid)이다. 선교사님이신 부모님을 따라 20년 전 베트남으로 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땅을 잠시 떠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베트남 MK이다. 대개 선교사 자녀를 생각할 때 믿음의 가정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온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비자발적으로 선교지에 가게 된 MK 중 꽤 많은 수는 현지에서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교회 혹은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등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MK로서의 삶을 잘 즐기고 누려왔다. 부모님과 함께 사역지를 따라다니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선교지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보호하심 그리고 채우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누려왔던 은혜들을 너무도 당연시 여겨왔고 받은 은혜들을 나의 신앙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교회에 가면 듣게 되는 아빠의 설교도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아빠의 잔소리처럼 들려지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 친한 친구와 영어 단어를 외우던 중, 친구가 한 단어를 가리키고는 “야 이거 딱 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신실한 척하는’ 혹은 ‘위선적인’이라는 의미의 ‘sanctimonious’라는 단어였다. 당시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친구에게 나는 그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고 세상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는 사실에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복음의 참된 가치를 모르고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지 못했던 내 모습은 바리새인과도 같았다.
20살이 되어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홀로 귀국하게 되었을 때 나의 신앙 여정은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은혜를 누리고도 선악과를 따먹으려 했듯, 이전엔 필수로 여겨졌던 신앙생활을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교만했던 나에게 계속해서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나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해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먹이시며 편히 쉴 곳을 허락하셨다. 더욱 감사한 건 남서울교회에서 전도폭발훈련을 받으며 복음의 참 의미를 알게 하시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신 것이다. 한량없고 갚을 길 없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이따금 자격 없는 나에게 왜 이렇게 과분하게 은혜를 허락하시는지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최근 욥기를 묵상하며 ‘무죄한 자의 고난’에 대해 생각할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아픔을 바라볼 때 더욱 그렇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시 나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아픔과 두려움은 남의 일로만 여겨졌다. 물론 내가 지낸 모스크바에는 실질적 위협은 없었지만, 전쟁 당사국에 살고 있던 내게 전쟁은 현실로 다가왔다. 다행히 혼란스러운 중에도 내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전쟁으로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비통한 마음에 한동안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들이 그런 고난을 받을만한 죄를 범했는가? 시간이 흐르고 전쟁이 장기화되었지만 그동안 모스크바의 상황은 전쟁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이내 전쟁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과 그렇지 않은 현실을 떠올리며 괴리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러시아의 국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왜 양쪽 국민 모두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구나.”(욥 12:6)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몸에 병까지 얻은 욥의 탄식이다. 욥이 당한 고난들은 우리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분명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욥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세상은 저들의 고난을 바라보며 욥의 세 친구와 같이 선과 악을 구분 짓고 악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만 바쁘다. 욥기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다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에 대해 보응하시면 어떡하지? 나에게 이제까지 과분한 은혜를 베푸셨는데 앞으로 고난을 주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나의 미성숙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고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기에 아무런 노력 없이 지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것들을 마땅히 하여 믿음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번 학기 내가 새로 입학하여 공부하게 된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구성원은 70% 가량이 외국인으로 이뤄져 있다. 외국인 동기들은 그리스도인인 나를 가리켜 ‘church boy’라고 부른다. ‘sanctimonious’ 했던 이전의 모습이 아닌 이제는 진실된 ‘church boy’로서 살아가길 소망한다.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매사에 최선을 다하되 성령을 의지하여 철저히 겸손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삶을 살아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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