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목회자 가정에서 삼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매일 큐티로 말씀을 가까이했다. 학업으로 지친 나의 마음에 성경은 크나큰 위로가 되었고, 성경 안에서 만난 예수님은 소망이 되었다. 이러한 신앙적 토대를 바탕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서 묵상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금 깨달으며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어떻게 기뻐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이 정답을 많은 섬김을 통하여 찾으려 하였다.
올해 여름방학 교회 청년부에서 필리핀으로 비전트립을 가게 되었다. 낯선 땅, 낯선 환경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과 여러 음식과 좋은 말씀으로 우리를 섬겨주신 선교사님 가정까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많은 사람과 교제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시면서 서서히 회복시켜 주셨다. 섬김의 사역이 일로 다가왔던 나에게 다시금 섬김의 기쁨을 허락하여 주셨다. 특히 ‘부에노’ 지역의 학교에서 사역을 진행할 때 학생들과 함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는데, 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너무 편하고 배부른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도전을 받았다.
“아, 하나님께서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때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 사랑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게 하시는구나!” 이렇게 이번 비전트립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은 후로 여름방학의 모든 사역은 굉장히 순탄하게 흘러갔다. 교회 각 부서 수련회 및 SFC 미자립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소망을 가지며 섬김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구성원 각각의 나이와 모습, 그리고 하는 일이 같진 않을지라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임을 알 수 있었다. 하나 된 믿음, 하나의 신앙으로 조직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풍족하게 누렸고, 이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느꼈다. 그리고 지난 학기에 불평, 불만이 많았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하여 주시는데, 내가 무엇이 두려우리오”라는 고백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담대하게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다짐을 하며 과거에 답하기를 미루어뒀던 고민들을 하나둘 상기하였다.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과제일 것이다. 과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의인에게 요구되는 특별한 삶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성경에서 찾게 되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여기서 ‘영적 예배’는 ‘spiritual’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reasonable’, 즉 ‘합당한 예배’를 의미한다. 그러면 이 합당한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걸까. 로마서 12장을 이어서 살펴보자. 바울은 13절에서 성도들과의 관계, 14절에서 사회에서의 관계, 15절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 로마교회에서는 바울의 명령,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우리는 영적인 가족을 위하여 무엇을 희생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희생을 더 큰 보상으로 약속하셨다. 로마교회는 땅의 보상을 원한 것이 아니라 더 큰 하나님 나라의 보상을 꿈꾸면서 이 땅의 것을 포기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묵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회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해내야 한다고. 예배란 형식과 감동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삶의 모든 일상 가운데 예배받기를 원하신다고.
공공선과 공동선을 실천해내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합당한 예배, 즉 각자의 자리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자비를 베풀며(미 6:8), 평화를 위하여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고 창조생태의 보존을 위하여 환경을 보호하는 것 등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의 삶을 드린다면 공공선, 공동선의 실천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혜받고 눈물 흘리고 찬양하는 것에 그치는 예배는 쉬운 예배이다. 다른 사람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려고 스스로 노예의 삶을 살아내고, 교회 안의 굶주린 사람들을 위하여 대가를 포기한 고대 로마교회 성도들의 삶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국가가 기독교를 박해하여도 굴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였던 로마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기에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러한 것들을 마땅히 해내는 그리스도인 될 수는 없을까? 나아가서 우리는 나 혼자 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내면 된다는 사고를 넘어, 함께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운동하는 삶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 위에 실현해내는 동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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