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최근 보험개발원의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수명이 90.7세,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로 5년 전보다 각각 2.2세와 2.8세가 증가했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남은 인생을 무얼 하며 보내야 할까? 은퇴를 맞이하는 50대 후반 또는 60대, 그리고 어떤 나이든, 우리는 항상 또 다른 장면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위해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신체 건강하며 경제력이 있으며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만 은퇴한 시니어(50-74세)를 일컫는다. ‘50플러스 세대’(50-64세)나 ‘신중년’(50-69세), ‘제3기 인생’(The third age, 40세 이후 30년), ‘골든 그레이’(50세 이후 50년)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으로 인생을 살 것인가이다. 흔히 황혼이 내려앉는 시기를 인생 후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상정해보면 5-60대는 겨우 오후 2-3시에 불과하다. 아직도 한창때이다.
지난 세월, 필자는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비영리단체 ‘의미경영 및 의미경영연구소’의 대표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으며 교육과 상담, 코칭을 해왔다. 그동안 인생희년학교와 갈렙프로젝트, 인생재설계대학, 인생2모작과정 등을 교회와 학교, 지역사회 평생학습관에서 열었으며, 수많은 강연과 저술, 신문 연재, 라디오방송 출연 등을 통해 인생 후반의 의미 있는 삶을 설파해왔다. 한편으로는 “중년 복지나 인생 2막 복지관은 왜 없을까?”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면서 말이다.
성경에서 희년은 50년째 되는 해에 땅은 원소유주에게 돌아가며 종은 해방되며 모든 것이 원상복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희년을 맞을 수 있다. 나이 50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희년은 오는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향하여 희년의 나팔을 불어온 지 어느덧 15년이 다 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고 무력감을 느낀다. 일본 양로원협회에서 주관한 세줄 글짓기 대회에 다음과 같은 입선작이 있었다고 한다.
“LED 전구/ 내 남은 수명으로는/ 다 쓰지도 못해”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는 글씨체/ 사실은 손 떨림”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면 사뭇 달라진다. 나는 위 시를 보고 이렇게 적어 보았다.
“떠가는 구름/ 옥상 툇마루 앉아/ 인생을 본다”
“할 일이 있어/ 아직도 남아있다/ 그 일을 하자!”
이런 삶을 도와주는 플랫폼이 현재 필자가 섬기고 있는 ‘의미경영 및 의미경영연구소’이다. 은퇴는 삶의 한 장면을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다음 장면의 시작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은퇴란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점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결국 ‘웰 에이징’(well-aging)의 문제로 귀착된다. 중년의 시기는 생존과 의미를 조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응원-허그’(Hug)가 필요한 세대들이다.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드리고 싶다. 반면 노년들은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삶을 보낼 것인가에 방점이 있다. 제2의 인생을 지원하는 뉴스타트(New Start)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줘야 한다.
인생 후반에 접어들수록 시니어들은 자립과 건강, 참여가 중요하다. “나는 현재 어디에 있나? 일생동안 이루고 싶은 사명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우리 모두 부르심(Calling)과 보내심(Sendijg)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그 일을 즐겁게 해나가야 한다. 인생 후반은 생기로운 여정이다. 단순한 추격도, 가혹한 경주도 아닌 목적의 나침반이 길을 안내하고 여유가 속삭이듯이 뒤를 받쳐주는 시기이다. 목적을 가지고 길을 가되 여유로운 포용 속에서 짐을 내려놓고 위로와 은혜를 구해야 한다.
인생의 유한함을 생각하여 시간을 아끼되 그렇다고 젊은 날처럼 성공을 추구하는 몸짓은 곤란하다. 인생 2막의 무대 위에서 게으름이 스며들지 않는 가운데 휴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 ‘무거운 의미’만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목적의식과 내려놓음의 조화가 필요하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비전과 사명, 가치를 중심으로 쉴 새 없이 달려왔다는 것을 절감한다. ‘지금’ ‘여기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삶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에도 말이다. ‘무거운 의미’의 너그러움이 ‘가벼운 의미’를 지지해주어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104세인 김형석 교수님이 지금껏 사회적 선을 추구해왔지만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는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문득 ‘뒷모습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사람을 ‘껴안아 주는 인생’으로 사는 것. 비전 가운데 위로와 공감이 있고 서로를 격려하는 그런 삶 말이다. 무엇보다 평생 현역으로 살기로 결심하시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영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갑진년 새해에는 더 신나는 걸음으로, 그러나 속이 꽉 찬 믿음으로 행진하시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5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