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최근 한국 사회는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시니어 세대’의 역할과 의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 즉 은퇴나 후 자기 인생을 단순히 마무리하는 존재, 소극적 조언자 역할이 아닌, 각자 영역에서 계속 적극적이고 자기 주도적 삶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신앙과 삶>(1+2월호) ‘사람 사이’는 인생 1막(경북대 교수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은퇴 후에도 여전히 역동적이고 멋진 인생 2막의 장을 이어가시는 대표적 시니어 양승훈 총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한 통찰과 혜안을 나누고자 한다.]
양성만 : 총장님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우선 근황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2021년 8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이하 VIEW)에서 은퇴하고, 2021년 10월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기독의과대학(이하 EMCU) 총장으로 부임했으니 어느덧 2년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EMCU는 학생 1000명, 교직원 120명 정도의 작은 대학이지만 총장이 할 일은 큰 대학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각종 회의, 정부와 지속적 협상, 후원자 관리, 방문자 접견 등. 여러 단체의 환영사, 축사, 격려사 등을 할 때도 자주 있고, 매주 한 번씩 교직원에게 보내는 Internal Communications(1-2면), 매달 쓰는 Fellow-worker’s Letter(8-9면), 두 달마다 이사회에 제출하는 VC’s Report(8-9면) 등등.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 퇴근까지 분주하게 일합니다. 감사한 것은 아프리카 외진 나라에 있지만, 인터넷 덕분에 가족은 물론 한국사회, 교포사회 등과도 계속 접촉이 가능합니다. 주말에는 대학교회와 지역교회들에서 한 달에 평균 2번 정도 설교도 합니다. 동시에 나이가 있으니 건강 관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평균 200분 정도 걷고, 화요일에는 퇴근 후에 집에서 가까운 온천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악기 연주도 하지요.
양성만 : 총장님은 이미 퇴직을 두 번 하셨지요. 1997년 경북대 물리교육과 교수직과 2021년에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원장 사역을 모두 마감하셨지요. 그리고 지금은 EMCU 총장으로 계시지만 아마도 곧 세 번째 퇴직을 하실 텐데요,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양승훈 :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제가 섬긴 단체는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입니다. 기독교 대학을 세우기 위해 힘과 기도를 모으는 단체였지요.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한동대가 설립되면서 “우리 손으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VIEW를 설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억력이 좋은 분이셔서 우리 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현재 EMCU 총장으로 계속 사역하는 것은 27년 전에 그만두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대표적 기독교 대학이자 VIEW가 소속된 Trinity Western 대학에서 24년간 근무한 후, 하나님은 이제 오래전 기도하던 기독교 대학을 한번 섬겨보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저는 EMCU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기독교 대학이 무엇인지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대학이 교회와 사회를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실험하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기회와 건강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양성만 : 교수님은 사람들이 이른바 ‘철밥통’이라고 하는 국립대 정년보장 정교수직을 그만두면서 오히려 “나는 하늘나라 철밥통을 갖게 되었다.”라고 자랑하셨어요. 이 표현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보는데요.
양승훈 : 제가 근무하던 경북대에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죽음과 같은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아마 IMF 외환위기가 오는 줄 알았다면 저는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직서 제출 두 주 후 IMF 외환위기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저는 캐나다에 가서 만 400일을 실업자로 지냈습니다. 정말 VIEW를 설립하면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나를 믿고 따라오는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이제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후 27년이 지났습니다. 그 긴 골짜기를 지나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직장도 은퇴가 있지만 저는 은퇴가 없는 하늘나라 철밥통 직장을 다시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VIEW라는 직장이 영원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의 고용주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은퇴하고 EMCU에 왔지만, 고용주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하늘나라 철밥통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양성만 : 은퇴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 물으면, 많은 경우 지금까지 뼈 빠지게 일했으니 이제 쉬면서 즐기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총장님은 어떤 조언을 하시렵니까? 아울러 시니어 세대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 사회와 정부, 교회는 어떤 것을 지원해 주어야 할까요?
양승훈 : 첫째, 우리는 월급 받는 세상 직장에서 영원히 근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용주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은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은퇴한 분들이 좀 더 여유 있게 사는 것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아서 움직이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잘 확인해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저는 노인을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70세에도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50대만 되어도 늙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혁주의자들의 말처럼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달란트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선물이라는 것은 기쁘게 살라는 의미이고, 달란트라는 것은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처럼 각자 맡겨주신 은사를 잘 활용해서 받은 달란트로 주인을 기쁘게 하라는 의미지요. 이렇게 은퇴와는 무관하게 인생을 죽을 때까지 잘 사용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생각됩니다. 셋째, 은퇴 후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라고 했습니다. 은퇴하기 여러 해 전부터 경제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가족들과도 나누고, 특히 은퇴 후에 선교지에 나올 생각을 하는 분들은 배우자와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대학에 계시는 분 중에 은퇴 후 선교지 대학에서 섬기기를 원하는 분들은 미리 부부가 함께 방학 때 선교지들을 방문해서 살펴보고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을 권합니다. 물론 재정과 건강, 언어(영어) 준비도 해야 하고요. 후원자들이나 파송하는 기관 하고도 논의해야 합니다.
양성만 : 목회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교회에서 60세 이상의 비율이 37.7%로 이미 교회 내 최대 연령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직분에서 은퇴한 71세 이상의 성도 절반 이상이 교회사역에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100시대를 맞이해서 교회 내 시니어 세대 역할의 변화도 필요하거나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양승훈 : 맞습니다. 요즘은 평균수명과 더불어 건강수명도 길어지고 있기에 70세가 되어도 건강한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적, 지적으로도 활동이 왕성한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적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성숙함도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과거와 같이 교회 직분에 대한 나이 정년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은퇴 나이가 지난 분들이 계속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있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분야마다 최고 지도자의 적절한 연령은 다르겠지만 대체로 50-60세 사이가 지적, 영적으로 성숙하면서도 가장 활발하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나 기관들의 최고 책임자도 예외적 경우가 아니면 65세 은퇴가 적절하지 않은가 합니다. 은퇴 후에는 최고 책임자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 돕는 것이 교회나 조직을 젊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제가 은퇴 후 다시 총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공채 총장이지만) 약간의 변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 2년간 영어권 대학에서 총장을 해 보니 제가 한국의 대학, 캐나다의 기독교 대학, 미국 대학원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 거의 빠짐없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20년 이상 VIEW를 위해 영어권 대학 책임자들과 일했던 것, 11년간 교회를 개척해서 담임목회를 했던 것, 캐나다 교단 지도자들과 일한 것 등이 도움이 되고요. 아프리카 대부분 나라들처럼 에스와티니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전통이 강해서 ‘흰 머리’(grey hair)의 ‘권위’(authority)로도 덕을 봅니다. 즉 이 나라의 첫 의과대학 총장으로서 정부나 국회 지도자들을 만나서 설득해야 할 일이 많은 데 도움이 되고 있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맡겨주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양성만 : 다음 세대를 키우고 준비시켜서 자리를 이어받게 하는 것도 시니어 세대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VIEW에 계시면서 어떻게 준비하셨고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 주셨는지요.
양승훈 :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2018년, VIEW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원장직을 후임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스스로 신체적, 지적으로 늙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VIEW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저와 연결되는 많은 분들이 대체로 제 나이와 비슷했습니다. VIEW의 네트워크 자체가 늙어간다는 의미여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리더십을 인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후임자를 위해 몇 년간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후임자는 복음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 언어적 문제가 없고 저와 15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너무 적으면 후임자도 얼마 있지 않아서 또 은퇴 준비를 해야 하고요. 너무 젊으면 그 사람의 역량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서 능력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저와 너무 많은 관점 차이가 나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양성만 :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하 동역회)의 1세대 중 많은 분이 이제 은퇴할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모두 각자의 현장과 학계에서 전문적 역량과 자원을 쌓아온 분들이지요. 따라서 계속해서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좋을 텐데요,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양승훈 : 저는 모든 단체나 운동이 그러하듯이 창립 세대가 그다음 세대에게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물려줄 수 있어야 그 단체와 운동이 오래간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동역회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미 상당 부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좀 더 과감하게 세계관 운동에 열정을 가진 40-50대가 실질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면 어떨까 합니다. 즉, 1세대는 축적된 지혜와 경험, 인맥 등을 통해서 다음 세대 리더십을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니어 세대가 볼 때 젊은 세대는 물가에 아이들 세워놓은 것처럼 위태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니어 세대도 이전 세대가 볼 때는 위태했습니다. 다음 세대가 기존 세대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양성만 : 시니어 세대가 되어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반대로 노년에도 특별히 더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덕성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울러 한국의 시니어 그리스도인들이 은퇴 이후에도 계속 가장 복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가 되려면 어떤 준비와 자세, 용기 등이 필요할지요.
양승훈 : 노인 세대의 강점은 지혜와 경험이고, 약점은 완고함과 과거에 대한 자랑일 겁니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사고가 경직되지요. 1980년대 초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시작할 때, 앞에 섰던 사람들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의 세계관 운동이 모두 보수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관 운동의 큰 위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세계관 운동이라는 용어를 바꾸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최근 ‘세계관’이라는 말에 붙어 다니는 보수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 저는 민수기 13-14장의 갈렙을 통해 시니어 세대 기독교 세계관 운동 지도자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80세 갈렙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라고 했습니다. 시니어 세대는 이제 현직에서는 물러나지만 갈렙과 모세처럼 인생의 마지막 스퍼트를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앞으로 10년이 한국 선교가 시니어(실버) 선교사의 전성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1955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 즉 65세에 은퇴해도 아직 청년과 같은 지력과 체력에 더하여 경제력까지 가진 시니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민소득 100불도 안 되던 시대에 태어나서 3만 불 시대까지 한국의 모든 발전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의 경험과 자신감을 선교지에 나누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한국 예장합동 선교부(GMS) 제2대 이사장을 지냈던 심재식 목사님이 은퇴 후 남아공에 마카다미아 농장을 만들어서 Immanuel International Bible College 모든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정말 대표적인 ‘액티브 시니어’ 삶의 가장 좋은 사례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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