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삶은 난파선이지만, 구명보트에서조차 노래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의 말이다. 평생 신분증처럼 그의 몸에 붙어 다니면서 그의 정신과 사상을 대변했다는 말은 이렇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평생을 다해 싸울 것이다.” 관용론의 함축이다. 실제로 볼테르는 기독교(신교)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고 표현의 자유와 사고에 대해 열렬히 옹호하면서도, 억울한 누명을 쓴 개신교도들의 복권과 배상금 지급에 최선을 다해 나서기도 했다. 근대정신의 옹호자, 구제도의 부당성에 대한 격한 고발인, 미처 계몽되지 않은 시민계급을 위한 계몽의 철학자답지 않은가.
하지만 70대 나이에 이른 볼테르의 육체는 뼈만 남아 앙상하다. 인생에 복수라도 하듯 시간이 그의 전신을 빠짐없이 공략했다. 앞머리는 한 올도 남아 있지 않고, 치아는 모두 빠져나가 입 모양을 꼭 다문 것처럼 만들었다. 가슴팍의 살은 오간 데 없고, 남은 거죽은 맥없이 중력에 이끌릴 뿐이다. 복부는 오글쪼글한 주름투성이가 된 데다 사지는 근육 대신 불거져 나온 정맥들로 덮여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물질들이 빠져나가고 오롯이 정신만 남는 물질의 해체과정이다. 그 한 가운데서도 볼테르는 여전히 노래를 불렀을까? 한참 산화 과정을 겪는 중인 이 계몽주의자의 육체 가운데 유독 두 눈만큼은 영롱하게 빛나는 것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조각가 장 바티스트 피갈(Jean Baptiste Pigalle)은 그럴 것으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관람자들이 ‘감각적이고 물질적이고 죄 많은’ 몸뚱이에서 순수하고 관념적인 영혼에 이르는 플로티누스적 정화과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작품: 장 바티스트 피갈(Jean Baptiste Pigalle), <나체의 볼테르 Voltaire nu>, 1776.
신체의 쇠락은 부끄러운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몸의 쇠락과 그것을 타고 체계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은 삶 이상으로 주의를 집중해야만 하는 문제다. 볼테르는 구명보트에서조차 삶을 노래할 것을 권하지만, 구명보트조차 없다면 어디서 노래를 부를 것인가? 볼테르가 그토록 비판적이었던 기독교의 수사이자 경건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던 토마스 아 캠피스(Thomas à Kampis)는 삶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즐거워하는 삶에 대해 말한다.
“이제 너는 죽을 때를 당하여 무서워하기보다도 도리어 즐거워할 만큼 그렇게 살기를 도모하라.”
하지만 어떻게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가. 토마스 아 캠피스는 하늘의 것을 순결한 마음으로 사랑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육체의 소욕, 육의 본성을 따르는 대가는 땅으로 끌어 내려질 뿐이다. 육체의 쇠락은 쇠락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육체의 쇠락 자체를 마치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깨우는 신호라도 되는 양, 늙음을 지성의 우수성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망상에 가까운 일이다.
하늘의 것에 대한 사랑은 펜이나 지성이 아니라 은총으로부터만 허락된다. 헛된 자기만족을 피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힘은 은총으로부터만 온다. “은총은 사람을 땅에서부터 위로 끌어 올려 하늘의 것을 사랑하게 만든다. 육적인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이 변화는 은총의 산물이고, 결과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새롭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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