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974년에 선포된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그 가르침에 근거하여 세계복음화와 사회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교회의 기본 사명으로 삼는 복음주의 교회들의 신앙고백이다. 그 언약에 동의하는 교회들의 네 번째 모임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론 한국 교회만을 위한 모임은 아니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만큼 로잔 언약을 꼭 따라야 할 상황에 놓인 교회는 없지 않나 한다.
로잔 언약 형성에는 세계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존경하고 신임하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와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함 목사는 복음전파를, 스토트 목사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나 두 분 모두 그 두 가지가 다 중요한 교회사역이란 것에 충분히 공감했다. 그런데 복음전파는 전통 교회가 처음부터 계속 강조해 온 것이지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중요하게 취급한 것은 로잔 언약이 처음이고 그것이 바로 로잔 언약을 새롭고 특별하게 만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신앙고백으로 도입한 것은 새로웠을 뿐 아니라 역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결하기도 했다. 물론 복음 자체도 영혼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의 올바른 길잡이고, 따라서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요 12:47),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동안 교회가 복음을 거역하고 대항하는 거대한 세상 세력과 싸워야 하는 과정에서 교회와 세상을 엄격하게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굳어졌고,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쓰는 것 자체를 세상과 타협하고 세속화하는 것으로 폄하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 흐를수록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사람의 삶은 점점 더 자연에서 벗어나 인위적이 되고 사회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다. 안전, 건강, 교육, 학문, 예술, 가치관 등 그 어느 분야도 사회 혹은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게 되고, 우리 개인의 정체성마저 사회에 의하여 결정되고 인식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복음의 적용과 전파조차도 사회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복음주의 교회, 특히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는 그동안 로잔 언약의 한 쪽 면, 즉 복음전파만 중시하고 그 다른 면, 즉 사람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회에 대한 그런 무관심은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무지와 무비판을 자아내어 사회의 부정적인 영향에 무력하게 노출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미국 복음주의자들 절대다수는 46명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치학자들이 최악이라고 평가하고 온갖 비도덕적 행위와 91개에 달하는 불법으로 기소된 트럼프를 지지해서 민주주의 보루로 알려진 나라가 한국보다 한 수 낮은 민주주의 국가로 추락했다. 또한 복음주의가 주류인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열렬하게 ‘돈’의 우상을 섬기는 사회를 비판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가치관에 감염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돈을 좋아하지만 돈 좋아하는 것을 무시하는 한국인들은 불교나 천주교보다 개신교를 더 조롱하고 불신하게 되었고, 마침내 교회의 복음 사역조차도 지장을 받게 되었다. 문화 전반의 세속화 탓도 있겠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젊은 신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지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기독교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4차 로잔대회가 한국 교회에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전망이 그렇게 밝지는 않다고 한다. 그동안 사회와 교계의 지탄을 받은 교회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너무 대교회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고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그중 하나다. 한국의 대교회들은 대체로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수적 성장에 치중해 왔기 때문에 로잔 정신에 충실했다 할 수가 없다. 한편 조금이라도 로잔 언약에 따라 사회를 정의롭고 투명하게 개혁해 보려고 안간 힘을 쏟아 온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기독시민단체들은 대부분 배제되었다. 거기다가 여비와 숙박료를 제외하고라도 350불에서 2000불이나 되는 참가비 때문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은 교회 교역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참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세계적인 대회니만큼 경비가 클 수밖에 없고 특히 가난한 나라 교회 대표들의 참석을 위해서는 막대한 액수의 여비와 체류비를 보조해야 하므로 대형교회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교회 전체가 십시일반으로 경비를 기꺼이 나누어 감당할 수 있도록 조직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 이런 상황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말았다.
상황이 그러한 데도 이번 대회가 로잔 언약의 본래 정신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재확인하고 재강조해서 한국의 대교회 지도자들이 대오각성하고 한국 교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한국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우상이 허물어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과 정의가 살아 움직이도록 한국 교회 전체가 나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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