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이하 ‘로잔대회’)가 열렸다. 150개국에서 24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제1차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운동의 국제적 연합을 끌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잘 알려져 있듯, 이러한 역사적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 제5항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위치하며 애초에 로잔대회에 시큰둥했던 제3세계, 특별히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들의 참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도와 사회정의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총체적 선교 개념은 이후 로잔의 기본 정신으로 여겨졌고, 로잔 언약을 통해 전 세계의 복음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1차 로잔대회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이 로잔 언약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약 400명은 언약에 서명하지 않은 채 로잔을 떠났다. 그 수가 수백 명이나 되는 만큼 그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로잔 언약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로잔대회를 이끌었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의 아내 루스 그래함(Ruth Graham)도 있었다. 당시 대다수 미국 복음주의자가 사회복음에 대해 경계했던 만큼, 전도와 더불어 정치 참여를 강조한 제5항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루스 그래함이 거부했던 것은 9항 ‘전도의 긴박성’의 마지막 문장, 즉 “우리 중에 풍요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단순한 생활양식’(simple lifestyle)을 개발해서 구제와 전도에 보다 많이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확신한다”이었다. 로잔언약 초안을 작성했던 존 스토트(John Stott)도 1974년 로잔 모임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9항 마지막 문장의 두 단어 ‘단순한 생활양식’이었다고 회고했다.
단순한 생활 양식 VS. 더 단순한 생활 양식
얼핏 보면 ‘단순한 생활양식’의 추구가 틀린 말 같지 않은 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루스 그래함은 존 스토트에게 ‘단순한 생활양식’ 대신 ‘더 단순한 생활양식’(simpler lifestyl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면 언약에 서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전도를 위해 현재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보다 ‘더 단순하게’ 사는 것은 감내하지만, ‘단순한 삶’ 자체에 헌신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반면 존 스토트는 ‘더 단순한 생활양식’이라는 표현이 타협으로 이끌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다. 빈곤이나 검소, 관대 등의 단어는 사람, 국가, 문화,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 단순한 생활양식’은 무엇에 비추어 혹은 누구와 비교하여 더 단순한 것인가라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제기한다.
존 스토트에게 ‘단순한 생활양식’은 복음 전도와 그리스도인의 삶 모두에서 중요 요소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이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산다는 사실 자체가 복음으로 사람들을 환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형태로든 불평등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친교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전도의 긴박성을 고려할 때 그리스도인은 생활에 필요한 것과 사치스러운 것을 구분해야 하고(딤전 6:6-8), 특히 부유한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족함을 배우고 ‘단순한 생활양식’을 개발해야만 한다.
‘단순한 생활양식’에 대한 1974년 로잔 언약의 강조는 1989년 제2차 로잔대회에서 작성된 마닐라 선언과 2014년 제3차 로잔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에서 계승되었다. 1980년에 채택된 ‘로잔위원회 특별활동 보고서: 단순한 생활양식에 대한 복음주의자의 헌신’(Lausanne Occasional Paper: An Evangelical Commitment to Simple Lifestyle)에서는, ‘단순한 생활양식’을 전도만이 아니라 사회정의와 정치, 국제개발, 가난과 부, 공동체 등의 여러 현안과 결부하였다. 더 나아가 오늘날 로잔 언약에 헌신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기후위기나 미니멀리즘, 창조신학 등의 맥락에서 ‘단순한 생활양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따져보는 중이다.
로잔, 한국교회, 그리고 단순한 생활 양식
제4차 로잔 한국대회를 앞두고 이제 반세기 역사에 접어든 로잔의 정체성과 정신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깊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도와 부흥을 강조하다 사회정의를 경시하며 균형감을 잃지는 않을까, 다른 한쪽에서는 총체적 선교라는 명목 아래 정치와 윤리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지는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논쟁이 대회를 앞두고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모두 ‘단순한 생활양식’의 실천 없이는 진실하게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심했으면 한다. 우선, 복음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를 해결해야 할 긴박성을 느끼지 못한 채 전도를 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복음 선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이 누리는 삶의 특권을 내려놓는 자발적 희생 없이 사회정의를 외치는 것은 위선에 빠지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전 세계가 당면한 기후위기를 고려해서라도, 개인의 영혼 구원이냐 사회 구조적 악의 해결이냐 논쟁을 넘어 신음하는 창조세계까지 선교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친환경적인 ‘단순한 생활양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로잔대회가 대한민국 정부의 수십억에 달하는 보조금, 한국 교회의 엄청난 모금과 후원, 국제 로잔 본부의 재정 비공개 등 소위 ‘돈 문제’로 시작 전부터 우려의 눈길을 받았던 만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행사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복음주의자가 ‘단순한 생활양식’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실천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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