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로잔의 독특성
로잔대회는 전통적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의구심과 재해석이 요구되던 1970년대에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대회였다. 거기서 로잔 언약이 탄생했다. 이 언약은 여전히 복음 전도가 절실한 미전도 종족의 현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과 아울러 사회참여를 선교적 의무로 격상시켰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를 선포하라’라는 1차 대회 주제가 보여주듯 당시 WCC와 구별되는 세계전도대회로 기획되었으나, 제 3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총체적 복음과 사회참여 주장을 수용하여, 양극화된 선교 운동 공간에 균형 잡힌 모델을 보여주었다.
유일한 복음에 대한 헌신
로잔의 균형에는 이유가 있다. 이 균형 때문에 기독교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급진적 제자도’ 그룹을 포함한 로잔의 복음주의자들은 ‘복음’과 ‘복음을 위한 사회적 행동’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선교할 때 복음 전도와 사회적 행동은 ‘분리되지 않지만 구별된다’(not separate but distinct)라는 입장(로잔 언약 5항)을 취한다. 이것이 근본주의나 에큐메니컬 선교 운동과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다. 그리스도 복음의 유일성의 기반 위에 복음의 변혁적 능력을 믿기에 로잔 특유의 그리스도 중심적 하나님의 선교론이 제시되는 것이다.
로잔의 현실
로잔에서 가장 쟁점이 된 주제는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의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세기에 기독교의 사회참여는 보수적 기독교 진영은 경계하고 진보적 기독교 진영은 독점하다시피 한 의제였다. 그러나 빈부격차, 인종갈등, 지역 불균형 등의 문제가 세계적으로 격화되는 상황에서 서구식 개인 전도 방법과 관점에 근본적 한계가 나타났다. 이때 ‘급진적 제자도’ 그룹 특유의 선교적 도전이 로잔대회에서 수용되었고, 그 결과물인 로잔 언약을 참가자 다수가 승인하였다. 그러나 선교의 주도권은 서구와 아시아 일부 그룹이 가지고 있다 보니 1974년의 로잔 언약이나 1989년의 마닐라 선언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전향적 약속을 천명해도 실제 구성원들은 전통적 구두선포 중심의 선교 운동에 더 집중했다. 물론 로잔의 ‘급진적 제자도’ 그룹이 총체적 변혁을 위한 국제연대(Infemit)를 구성하여 꾸준히 활동해 왔지만, 로잔 문서들이 말하는 균형과 참여가 실제 교회와 선교 현장에서 구현되는 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케이프타운의 성과
로잔의 선언과 실천의 간극을 메꿀 대안이 로잔 3차 대회의 결과물인 케이프타운 서약에 포함되었다.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대회 주제처럼, 복음 전도 우선성 논쟁을 정리하고, 화해와 평화를 향한 선교적 실천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서약문은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근본적 정신임을 밝힌다. 이 정신은 에큐메니컬 선교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로잔 언약 자체(로잔 언약 1항 하나님의 목적)에서 가져온 것이다. 복음 전도 우선성 논쟁을 의식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의 중심성을 강조하되 그 복음이 총체적 성격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복음 전도는 모든 선교 과정에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궁극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해 개인 전도를 항상 우선적 실천과제로 앞세워, 다른 선교사역이 배제되지 않도록 전도의 위상을 전환한다. 이런 단계를 밟아 케이프타운 서약은 하나님이 이루신 화해와 평화를 이웃과도 실현하기 위한 생활양식 개발과 실천을 촉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reconciliaition)를 향한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
교회에 로잔은 너무 낯선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로잔은 한국 교회에 깊이 영향을 끼쳐왔다. 한국 교회의 폭발적 성장과 해외선교사 파송의 계기에 1970년대 로잔의 세계 복음화 운동이 있었다. 로잔의 사회참여 주장은 1990년대 이후 기윤실, 성서한국 등 한국개신교 복음주의 사회선교의 근거가 되었다. 이제 21세기 로잔은 한국의 지역교회에도 묻고 있다. 2010년 로잔 3차 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은 로잔의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로 규정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화해와 평화를 세상 속에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폭력적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증거하고 파괴나 복수의 행위에 동참하기 보는 차라리 고난이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갈등의 상처를 장기적으로 치유하는 데 참여하며, 교회는 피난처와 치유의 장소가 된다.”(케이프타운 서약 2부).
종래의 선교는 이른바 ‘교회가 주도하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선교’였다. 로잔의 도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동참하라는 것이다. 예배, 교육, 봉사에 더하여 선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에 예배, 교육, 봉사를 재위치시킬 수 있을까?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가들이 말하듯이, ‘선교가 있는 교회’(Church with Mission)에서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이다. 이런 메시지를 가득 담은 로잔이 한국을 찾는다.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적 하나님의 선교로의 대전환를 수행할 수 있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5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56길 8-13, 수서타워 910호 (수서동)
(06367)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