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4차 로잔대회(2024. 9. 22.~24.)에 벌써 많은 관심과 적지 않은 염려도 있다. 그것은 단지 로잔대회와 로잔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넘어 21세기 세계교회와 한국 교회의 과제를 애써 고민해 보자는 충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2024년 로잔대회는 왜 다시 소환되었나? 복음의 본질은 변치 않고 항상 영원하지만, 그 복음을 각 시대에 적용하는 우리의 이해는 늘 달라져야 한다. 이는 이방 선교를 놓고 격돌했던 예루살렘 회의(행 15장)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당시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할례받고 율법 지키는 충실한 유대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유대의 모든 경계를 벗고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차별 없이 주시는 선물로 다시 고백했다.
이처럼 모든 시대의 복음 운동은 항상 새로운 선교 과제와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시대변화에 따른 복음 운동의 변화는 로잔 운동 이전에도 있었다. 산업화와 근대화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은 기독교 선교와 짝을 이루며 무한 성장과 발전, 복음화를 꿈꾸었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한순간에 무너졌다. 서구 교회와 선교계도 전쟁, 빈곤, 독재, 식민지 등 인간이 실제 맞닥뜨린 과제를 무시한 선교라는 게 얼마나 공허한지 뒤늦게 깨닫고 세계교회가 선교와 시대적 과제를 함께 모색하자는 취지로 WCC 운동을 시작하였다.
또, 넓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개신교보다 훨씬 무거운 철갑을 입고 살아온 가톨릭 세계가 먼저 움직였다. 교황 요한 23세의 제의로 개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를 통해 가톨릭은 개신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가족들과 공산권을 초대했으며, 평신도의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와 이웃을 향한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협력과 공존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 뒤에도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와 프란치스코(2013년~현재) 교황 등을 통해 가톨릭의 성육신은 더욱 확실하게 자리 잡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는 진통과 반발도 많았다. 특히 WCC 운동은 지나친 인간화로 치우치면서 전통적 교회와 선교를 벗어났다는 우려가 커지며, 196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모습의 국제 복음주의 운동이 모색되었다. 그게 로잔 운동이다. 로잔 운동도 복음은 영원하지만, 시대와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교회와 선교도 시대에 맞는 과제와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자는 뜻이었다.
아슬아슬하고, 미흡한 면도 많았지만, 주류적인 빌리 그래함과 도전적인 남미 제자도 그룹 사이에서 존 스토트의 탁월한 조정력이 발휘되어 1974년 첫 단추를 잘 끼웠다. 그래서 10년쯤 흐른 1980년대 중반 저 멀리 한국 땅에서도 ‘난데없이’ 로잔의 씨가 맺혔다. 당시 한국 사회는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대가 한창이었고, 온 세상을 만드시고 선하게 다스리신다는 고백과 다르게 엄혹한 시대 현실에 무력하던 젊은 교수, 목회자와 청년, 학생에게 뒤늦게 전해진 로잔 소식과 문서들은 하나같이 생수처럼 여겨졌다.
그때 이후 30여 년이 넘도록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좋은교사운동, 희년함께 등 다양한 기독교 사회운동과 연합체인 성서한국을 만드는 등 한국형 복음주의 운동의 꽃을 피웠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역시 당시 로잔 운동의 맥락에서 시작되어 지금껏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로잔 50년을 맞아 이제 한국에서 4차 대회를 유치하여, 지금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잔 한국 준비위원회는 이러한 로잔 운동의 역사적 맥락, 신학적 배경을 좁게 이해하여, 오직 WCC 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척점으로서 정체성을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필자는 4차 로잔대회가 이제 ‘복음 전도와 사회선교 중 무엇이 우선이냐’ 같은 식상한 되풀이보다 무엇이 이 시대에 필요한 선교방식이며, 과제인지 더 진지하게 묻는 자리이기 바란다. 기독교가 존재하는 한 선교는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선교’라는 이름만 달면 뭐든지 정당화되어 온 선교적 거품, 세일즈 선교를 이제 극복해야 할 때다. 또, 끊임없이 이슬람 선교를 시도하면서도 크게 벗어내지 못한 이슬람 혐오주의를 내려놓고, 이미 국내에 체류하는 수많은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를 나그네로 영접하는 환대 선교를 진지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구권을 뛰어넘는 비서구권의 성장과 역량이 이미 확인되었음에도, 국제 로잔과 한국 준비위원회는 여전히 미국 등 전통적 서구권 중심으로 운영되는 듯한 모습도 이제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 1953년 휴전 이후 최악이라는 한반도 위기 상황과 국제평화의 과제, 심각한 온 지구의 기후위기, 갈수록 커가는 경제 불평등과 국제 빈곤 문제, 성(性)의 역할과 새로운 관계 설정, 지구적 저출산 상황 속 다음 세대에 대한 복음화 과제 등 산적한 사회적, 선교적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대회는 그때로 끝나지만, 하나님 교회의 현실은 두고두고 남는다. 2024년 9월 로잔대회가 다음 세대에 주는 국제 복음주의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저 50년을 맞는 기념대회만은 아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로잔대회 준비를 위한 마지막 제언을 필자가 2022년 9월,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글 일부를 인용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로잔 한국 대회가 단지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특정한 개신교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익숙한 우리들의 언어로만 남아서는 안 되고,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함께 들려져야 한다. (…) 지난 6월 '로잔 뉴욕 국제 리더십 회의'(L4NY)에서 유기성 목사가 했던 말처럼 한가하고 태평한 심정으로 큰 행사 하나 잘 치렀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회가 되지 않으려면, 좀 더 절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로잔 한국 대회의 참된 성공을 위해 더 깊이 성찰하고 절실히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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