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로잔 운동은 복음주의적 정체성 하에 다양한 문화, 인종, 세대, 교단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 교류하는 국제적인 플랫폼 혹은 공간이다. 이러한 로잔 운동 구성원들의 다양성은 지금까지 개최되었던 로잔 대회들의 참가자 구성에서 나타난다. 한 예로, 1974년에 열린 제1차 대회의 경우 총 2,473명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각기 다른 150개의 국가와 135개의 개신교 교단에서 왔고, 이들 중 1,000명 이상은 비서구권 지역 출신이었으며, 이들 중 절반가량은 44세 이하였다. 복음주의자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지녔지만,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이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우리에게 상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배움이 늘 순적한 방식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복음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음에도, 각자의 배경, 강조점, 관점의 차이로 인한 긴장 혹은 갈등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은 로잔 운동의 기틀을 놓은 두 인물, 곧 빌리 그래함과 존 스토트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제1차 로잔 대회의 기획자인 빌리 그래함은 이 대회를 통해 '복음 전파'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의미의 기독교적 선교관이 재천명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그래함의 기대는 로잔 대회가 “복음 전파를 위한 여러 선교운동들의 전통 위에 서 있다”라는 점을 역설한 그의 개회 연설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물론, 그래함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복음 전파'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상실해가는 여러 기독교계의 움직임들을 지켜보며, 로잔 대회가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다른 어떤 선교적 사안들보다도 더욱 확실하게 강조하는 대회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존 스토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1960-1970년대 스토트는 젊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좀 더 총체적인 선교관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스토트의 이러한 총체적 선교관은 제1차 로잔 대회의 중요한 결실인 로잔 언약에 반영되었다. 로잔 언약 작성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스토트는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특히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젊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총체적 선교에 대한 목소리를 로잔 언약 속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로잔 언약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했고, 로잔 언약의 선교적 총체성에 대한 강조는 전 세계 많은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기독교적 사회 실천의 토대가 되었다. 물론, 로잔 언약 제6항이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 전도가 최우선"임을 강조했지만, 제5항의 존재는 로잔 대회를 좀 더 총체적인 선교를 표방하는 모임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로잔 대회를 통해 전통적인 선교관을 확고하게 천명하려 했던 그래함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였다.
그러나 그래함은 기꺼이 로잔 언약의 첫 서약자가 되었다. 본래 그래함은 각종 성명서나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거부해왔다. 서명으로 인해 파생될 문제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로잔 언약은 그에게 "유일한 예외"였고, 그래함의 공개적인 지지를 통해 로잔 언약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문서가 될 수 있었다. 그래함이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로잔 대회를 좀 더 총체적 선교를 표방하는 모임이 되도록 만들었던 로잔 언약의 첫 번째 서약자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모습은 그 자체로 로잔의 정신을 시사한다. 그래함은 제1차 로잔 대회 개회 연설에서 세계 각지의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의 차이를 강조하며,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채 이들의 신앙적 실천과 반응들을 균등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를 경고했다. 그리고 그래함은 로잔 대회가 각기 다른 상황, 생각, 입장을 지닌 전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교제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히며, 이러한 교류·교제의 정신을 "로잔 정신"으로 규정하였다. 1차 로잔 대회에 대한 분명한 기획 의도를 지니고 있던 그래함이 그러한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진 않았던 로잔 언약에 서약한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그래함이 강조했던 ‘로잔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로잔 운동은 로잔 언약을 비롯한 로잔의 여러 공식문서에 동의하지만 각기 다른 배경과 다른 신앙적·신학적 강조점과 관점을 지닌 전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복음주의라는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닌 다양성은 언제나 긴장과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로잔 운동은 그 운동을 시작한 이들로부터 시작되는 ‘로잔 정신’ 안에서 이러한 긴장과 갈등 자체를 끌어안는다. 그 정신은 그래함이 강조한(혹은 보여준) 것으로, 복음주의라는 공통의 토대를 지닌 이들이 그 토대 위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함께 나누고 이를 경청함으로써 서로에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이다. 물론, 이러한 경청과 상호 배움의 시간이 항상 ‘완벽하게 일치된 입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잔 운동이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복음주의적 다양성은 우리의 신앙과 사역을 풍성하게 할 자원으로 가득하다. 오는 9월 한국에서 개최될 제4차 로잔 대회를 앞둔 우리가 로잔 운동을 '경청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상호 배움의 자세'로 대회를 맞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자원의 놀라운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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