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대학원생 시절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를 통해서 회전익 항공기의 설계 및 해석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회사에서도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업무를 배우고 있다. 항공기 설계에 필요한 보조 업무들을 통해서 전체적인 설계 프로세스를 익히고, 실무에 필요한 기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업무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신중함을 요구하는데, 스스로 꼼꼼한 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적응이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업무 중에 연속 실수를 하면서 주변 팀원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팀장님께 보고 후, 어쩔 줄을 몰라서 저녁 시간 내내 여러 관계자를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고, 뒷수습을 한 일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책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겸손하라.” 하나님께서 준엄하게 꾸짖는 듯했다. 사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졸업과 동시에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했다. 대학원 재학시절에 졸업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취업 후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 힘과 능력을 속으로 자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잇따른 업무 실수는 지금 회사 업무들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던 교만을 하나님께서 꼭 집어내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전문성의 영역에서도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셨다. 그 일은 동료들의 협조로 다음 날 잘 처리되었고, 내 마음은 곧 평안을 찾았다.
요즘은 회사가 많이 바빠졌다. 나는 현재 제안서 작업팀에 합류해서 중요한 프로젝트의 제안서 일부분을 쓰고 있다. 신입사원인 내가 맡은 분량은 적지만, 회사는 이 제안서 작업을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많은 직원이 주말에도 출근해서 작업을 하는 상황이다. 또한 개발 사이클상으로도 소속 부서는 현재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모두 함께 야근하며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날도 많은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인정받고 주변에 피해주지 않기 위해서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때로는 그 열정이 너무 지나쳐서 사무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일을 하거나, 회의 전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밤새도록 회사에 머물다가 늦게 집에 돌아간 적도 있다.
이러한 시간을 반복하며 하나님께서는 결국 내 힘만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을 주시고 다시금 나의 '교만'을 깨닫게 하셨다. 나는 어떻게든 인정받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직장에서의 기반을 견고히 다지는 것이, 내 삶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 같다. ‘커리어’가 나의 우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고 청탁을 받고 최근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다시 읽은 적이 있다. 저자 고든 맥도날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기도가 일종의 행동 부재로 보이는데, 즉 어릴 때부터 우리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배워오면서, 영적인 성격을 띠는 일에 대해서는 시간 낭비라고 느끼게 된다. 둘째, 기도는 본질상 인간의 나약함을 시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종종 기도가 실제 결과와 무관한 것처럼 보아서, 유효한 방편으로 보지 않고 직접 나서서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되었다. 즉 나는 일을 할 때, 기도하기보다는 시간을 좀 더 내서 어떻게 할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했었고,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당장 들어주실지 모르기에, 하나님이 필요하지만, 종종 지금 당장은 내가 나서야만 하는 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손에 익숙한 일이라며 기도하지 않았고, 기도할 때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했었다.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의 인간으로 오는 것 대신 내가 하늘 보좌로 직접 올라가는 편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구원만 책임져 주세요, 제 삶은 제가 책임질게요”라는 식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원 시절에도 같은 문제로 씨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움에 직면하면 어떻게든 엉덩이로 승부를 보려 하고 경험에 의지해 일을 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절대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야 겨우 나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곤 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벼랑들을 경험하고 대학원을 졸업했고, “여기만큼 혹독한 곳은 없을 것이고, 더 이상의 벼랑 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준비하면서 나는 내가 지금도 계속해서 같은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다른 벼랑을 통해서 시편 기자의 선포를 하나님께서는 듣게 해주셨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시편 기자는 두려움에 휩싸인 자신의 영혼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고 불안해하는가! 너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모든 세월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동행을 했듯이 나 또한 그 동행의 여정 속에 있음을 다시금 믿고 고백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것이 진정 내게 매일 선포되어야 할, 내가 선포해야 할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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